야메

"손님.. 경고문 안보셨어요? 아마튜어는 보장할 수 없다고 분명히 써놓았잖아요. 그냥 프로를 쓰시면 되는데 왜 아마튜어를 선택하세요."

프로를 골라도 꼭 프로  8번이나 9번등 아래에서 찾다가 없으면 위로 올라온다. 그렇게 돈많은가? 내 돈주고 마사지 받으면서 왜 들 그러시는지..

사람들은 꼭 유명한 병원 멀리하고 야메한테 자기 자신을 맡긴다. 결국 결과는 뻔하다.

벤치마킹

프로와 아마튜어의 구분은 후에 골드 실버 카퍼 스틸의 네가지 구분으로 나누어졌다. 얼마후 텐프로라는 업소가 생긴 모양인데 분명 내 사이트를 벤치마킹한 듯했다. 가보지는 않았다. 뭐하는 곳인지..아마 상위 10퍼센트 이내의 외모를 가진 여성들을 고용한다는 뜻일 것이라 짐작하고 있다.

자연계에서는 언제나 텐프로가 살아남는다. 나머지 동물들은 대개 육식동물의 먹이가 된다. 살아남은 텐프로는 번식하여 더 우수한 텐프로를 이어나갈 것이다.

그러한 것이 자연의 법칙일 것이다.  적자생존 ..우수한 인재를 선별하려는 노력..차별..세상은 어쩔수 없다. 차별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에 나는 그 모든 것을 포용해 보려는 무모한 시도를 했었던 것이다.

원칙대로라면 아마튜어니 실버니 카퍼니 하는 계급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그냥 되는 놈만 뽑으면 되지 않겠는가?  더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벤치마킹은 그렇게 성인 업소에서도  이어진 듯 하다. 한번은 어떤 성인업소에서 출장 교육을 요청해와 두명의 아가씨들에게 마사지를 교육하고 온적도 있다. 서비스 교육은 아니었지만 아마 그 업소는 대박났으리라 생각한다.

두시간 만에 핵심만 콕콕 짚어서 거의 프로의 수준으로 기술을 전수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으리라고 본다. 그리고 어디선가 여성들이 찾아와 교육을 요청하고 가기도 했다.

 

 

학력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마사지사들의 학력을 표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미쳤다. 내가 고학력자이기는 했지만 앞서 말했듯이 나는 학력에 대해서 주로 무심한 편이었다. 그리고 물론 마사지사들을 학력으로 가리지도 않았었고 만일 마사지가 아니라 내가 삼성의 사장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학력과 무관하게 직원들을 뽑을 것만 같았다.

마사지사의 학력을 표기하겠다는 것은 그냥 역발상이었다. 주로 마사지와 학력을 무관하게 생각하고 실제로 그러하니 왠지 학력을 표기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얼마뒤에 대x방이라는 업소가 생겨 확산 되었는데  그당시에는 유사성행위라는 법적 규정이 따로 없었던 터라 합법화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업소의 학력에 대한 이용은 어디선가 내 사이트를 보고 힌트를 얻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마사지사가 고학력자인 경우도 거의 없고 있다해도  학력 표기가 거의 전무했다고 볼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문제

개인적으로 너무 노골적인 성인업소가 등장하는것도 바람직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굳이 안되는걸 기어코 금지시키는것도 억지스럽다고 보여진다.

현대사회에서 불필요한 규제도 사라지고 있는 추세인데 억지스러운  금지는 더더욱 미숙해 보인다. 성인 업소는 허용하되 간판이나 광고에 대한 규제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모 여시장은 공창을 도입하자는 신선한 발언을 했었다. 그러나 사실 성이라는 것은 허용이라는 것도 적절한 것은 아니다. 성이라는 것은 허용도 할 수 없고 비허용도 할 수 없다. 허용이라는 것 자체가 어색한 것이다. 하던 말던 그것은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지구상의 누구가 되었던 성에 대한 관여를 할 자는 신이외에는 없다. 당신이 누군가와 키스를 하는데 혓바닥을 얼마나 내밀었는지 자를 대고 기준에 맞추어 영업허가증을 내니 마니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눈에 띄어 노골적이 되지 않도록 표면적인 규제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남미와 유럽의 모든 국가에서는 매춘이 허용되어있다. 알선을 포함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좀 갈리지만 일인 매춘은 모두 허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즉 전세계의 절반 이상은 매춘을 허용하고 있는 셈이다. 유교국가인 한국에서 실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좀 부작용을 줄이자면 매춘은 허용하되 호객이나 광고 간판 축소등으로 간단히 해결될 문제이다. 

프리랜서

지원자가 많았더라도 사람들을 고용한다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마사지도 그럴수 있지만  누드모델 같은 경우는 특히 프리랜서로 일해야 하는 직업이다.

누가 누드모델을 고용해서 월급주면서 일을 하겠는가. 누드모델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수요가 많은 직업이 아니다. 대개 지원자는 한달에 얼마 벌수 있는지에 대해 문의한다.

프리랜서이니 수입은 보장할 수 없다고 하면 그냥 돌아가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왜 틈새를 찾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모델일을 하더라도 다른 직업을 갖지 못하는 것이 아닌데 일요일이나 퇴근후에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있으면 하면되고 없으면 손해볼것없는데 왜 안하겠다는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월급받는 것이 소원인지.. 월급 받는다는게 좋은 것 같지만 그만큼 수익은 낮아진다는 것을 모르는가?  월급을 받는 것은 양계장이나 다름없다.

수입은 보장이 되겠지만 그 수입이라는 것은 당신이 하루에 알을 두 개씩 낳아야 하는 것만큼 쥐어짜야 하는 것이 월급인 것이다.

나는 월급받는 생활을 양계장에 비유하며 프리랜서의 개념과 전망에  대한 글을 모델과 마사지 페이지에 모두 추가했고 지원하기 전에 반드시 읽도록 한후 면접을 받았다.

얼마뒤에 국내에는 프리랜서 열품이 불기 시작했다.특히 아나운서의 프리선언이 줄을 이었는데 김성주씨나 백지연씨의 독립이 그때 즈음이었다. 내가 쓴글이 영향을 주었는지는 알수 없으나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지는 것은 다른 경우와 동일한 것이었으므로 그렇게 짐작하고 있다.

장폐쇅

등록된 모델들도 수만 많았지 변변치 못했지만 마사지사들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 괴롭힘의 선두에 있었던것이 프로 2번 톰이었다.

톰이 직장에서 쫒겨나고 우리집에서 거주하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을때였다. 침대에 누워 전화를 걸고 있는데 침대와 전화기 사이가 멀었다.

누워서 받는 통에 전화기가 따려와 마치 전선에 전화번호책 걸려있듯이 한가운데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것이었다. 미친거 아닌지 눈뜨고 볼수 없어 한바탕 했다.  한바탕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아니어 보였다. 세상에 어느누가 전화통을 허공에 달고 쓴단 말인가. 당장 내쫒아도 시원치않았지만 또 참았다. 자기네 집에 놀러가면 안절부절하면서 남의집에서는 왜 그러시는지..

어느날 마사지실에 가보니 누군가 껌을 문앞에 있는 벨 옆에 쑤셔 밖아놓았다. 그것도 세개를 한꺼번에 씹었는지 큼지막했다.

입에서 저주가 흘러나왓다. '어떤 x새낀지 나가 뒈져라.'

가만생각해보니 톰밖에 이런 미친지랄을 할 놈이 없었다. 침대맡에 껌을 붙이고 잔걸 한번 본적이 있었다.

"It was you. I cursed him."

"그게 너였지. 입에서 욕나왔다고 저주했다고."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거 보니 맞는듯 했다. 그가 있는 직장에서도 이런일이 되풀이 되었다.

 

 

내가 같이 산다니 혹시나 내가 무슨 배후의 인물이라도 되는지..무슨 끄나풀이라도 되는건 아닌지 생각되었나 보다. 전화를 받으면 톰의 만행에 대한 항의가 이어졌다.

왜 그러냐는 것이다. 컵라면을 먹고 창문밖으로 통째로 집어던진다는 것이다. 진법무민 사주가 틀림없다.

 

버섯은 다 자라는 방법을 알고 있다 썩은 나무에서만 성장한다

개는 귀여움을 무기로 진화해왔다 아양떠는 개는 살아남았고 그렇지 않은 개는 잡혀먹어왔다.

그래서 개는 점점 귀여워져 간다.

 

악은 언제나 성장하는 방법을 알고있다. 톰은 그 방법을 알고 있는 듯했다.

질책이라도 좀 하려고 하면 곧 아프다. 아프다고 엄살떨면 어쩌지 못하게 된다.

문앞에서 쓰러졌네 밤새 구토를 했네 하면서 온갖 불쌍한 척을 다하니 결국 질책을 포기하게 된다.

그것은 엄살이 아니라 사실이기도 했다. 툭하면 아팠다. 그러나 아프지 않았다면 그는 살아남지 못했을것이다. 그가 생존할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를 결국 내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그는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데굴데굴 굴렀다. 119를 불러 백병원에 데려갔다.

장폐쇅이라는 것이었다. 장이 움직이지 않아 음식을 먹을 수도 없을뿐더러 분비되는 위액이 배출되지 않아  배가 터져서 죽는 병이라고 한다.

콧속으로 고무관을 삽입하여 위액을 빼내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고무관끝이 부드러운데다가 젤을 발라서 삽입하니 그리 고통스러운 것은 아닐 것이다. 하도 발버둥을 쳐서 관 삽입하는데만 두시간이 걸렸다. 낫지 않으면 나중에는 소변줄을 꼽아야 된단다. 고추구멍으로 관을 삽입한다는 것이다.

 

 

선릉역 마사지실

 

을지로 6가의 어떤 단골 마사지손님이 마사지가 끝난후 나에게 조언을 하나 해주었다. 마사지를 받고 나면 말이 많아지게 된다. 그것은 술을 먹으면 말이 많아지는 현상과 비슷하다.

기가 충전되니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왜 이런데서 장사하냐면서 장사는 강남에서 해야 돈번다며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때는 강남이 한창 잘나갈 때이기도 했다.  아파트값 치솟기 이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강남이 갑이었다.

모르는 바 아니었고 대부분의 손님들이 강남에서 오는 형국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굳이 강남을 갈 필요성은 못느꼈다. 여기서도 잘되는데 굳이 갈 필요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사람이 원래 귀가 얇아서 쓸데없는 말도 자꾸 듣다보면 흔들리게 된다. 그래? 한번 가볼까?

굳이 상계동 아파트에 살면서 왔다갔다 할필요가 없지. 마사지실에서 살아도 되는 것이고..

 

톰에게 강남으로 이사가겠다고 말하자 강남이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는 톰은 안된다며 펄펄 뛰었다. 마침 얼마뒤에 톰은 두바이로 떠났다. 캐나다 출신인 톰은 전세계로 영어교사자리를 찾아 이력서를 낸다. 합격하면 짐싸고 가는 것이다.

물론 학력은 가짜다. 인터넷에서 복사한 석사학위증을 하나 만들더니 카피하겠다고 프린트 전문 샵을 방문한적이 있다.  

위조라며  거부당했다. 학사학위는 있지만 이것도 진짜인지는 모르는 일이다.  얼마나 오래 있을지 모르지만 이때다 싶어 이사를 갔다.

선릉역의 오피스텔은 17평이었나 했는데  을지로 6가의 오피스텔보다 두배는 넓게 느껴졌다. 덧문이 달린 칸이 하나 나누어져 있어서 그런 듯하다. 냉장고와 세탁기는 빌트인이고 화장실도 산뜻하다.

월세 70만원으로 좀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상계동의 아파트를 50만원에 세를 주었으니 이십만원만 부담하면 된다.

 

 

 

꿈을 꾸었다.

어느 풀장에 들어갔는데 한참 헤엄치다가 끝까지 가지 않고 도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여기도 오래있지는 못하겠구나 싶었다.

 

 

저는 꿈을 꾸면 신기하게 맞아요. 유금(酉金)이 있으면 꿈을 잘 꾼다고 하더라구요.

쉬는시간에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침묵하고 썰렁하게 있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은가?  이참에 과거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것도 그닥 실례는 아닐 듯 싶다.

"삼년동안 내리 꿈만 꾸었죠. 꿈만 꾸면 이빨빠지고..어찌나 생생한지..그러다가 어느 외국인 친구를 하나 만났는데 이빨이 몽땅 빠져있다라구요. 밥만 먹으면 줄줄새요. "

"그러다 장폐쇅이라나..병원에 실려갔다가 죽을 뻔했는데 겨우 살았어요. 매일 복부 마사지 해주고..간신히 살려놨죠. "

"이빨이 없으니까 밥을 잘 못먹어서 그렇게 된건데... 그때 갑자기 일억원의 유산이 떨어졌어요.  사람이 죽어가는데 돈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

"임플란트 해주었는데 삼천만원이 들었어요. 상황이  딱 맞아 떨어지는데..이건 내가 해주게 되어있는 거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해줬어요."

안봐도 훤한 질문을 회원 한사람이 던졌다.

"그리고 그사람은 지금 어떻게 됐어요? "

"도망갔죠 뭐. "

 

병원에서 그리고  퇴원한 후에도 나는 톰을 치료하기 위해 안해본 것이 없었다.  어느 때는 또 속이 불편한지 한밤중에  일어나  내 방 문앞을 서성이기도 했다. 그러면 자다 일어나서 복부마사지를 해주었다. 기치료도 물론 병행했다. 배가 워낙 튀어나온데다가 딴딴해서 마사지하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몸에 좋다는걸 워낙 처먹어서 탈이 생긴 것이다. 하루에 인삼드링크 원비디 삼십개를 먹으니 탈이 안나겠는가? 약국 아줌마가 팔면서 왜 킥킥 대냐는 것이다.

일억원이 생긴후 엄마는 꿈을 꿨는데 돈이 자기에게 들어오지 않는 이상한 꿈을 꾸었단다. 그게 당연한거지 왜 이상하다는건지 점점 이상해지신다.  

일억원만 주면 모든 빚을 싹 갚는다면서 아예 통째로 달란다. 갈수록 심해지신다.  앞으로는 빚 안진다는 각서까지 쓰겠다고 한다.   각서써서 빚안질 것 같으면 벌써 썼겠지..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그건 톰의 공이 컸다.

 

 

임플란트를 한 후에 휴양도 할겸 톰과 나는 보라카이로 일주일 여행을 떠났다. 마시지도 받고 울창한 삼림도 구경하고 기분은 괜찮았다

톰은 비자를 얻기위해 직장이 바뀔 때마다 해외에 나갔다와야 하는 모양이었다. 같이 가자길래 얼마 안들여서 갔다왔다. 호텔은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직접 예약하고 비행기만 여행사를 통해 할인 받아서 실컷 먹고 쓰고  항공료 포함해서 십여만원 밖에 안들었던 것 같다.

음식도 그렇고  마사지도 그 동네는 무척 싸다. 일전에 갔었던 푸켔은 갔다오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쓰나미로 다 쓸려갔다. 바로 그 자리였다.

그리고 후에 톰은 두바이로 직장을 구해서 떠났고 나는 그틈에 선릉역으로 이사를 갔다.

두바이에서 돌아온 톰은 새로운 장소가 그닥 싫지 않은 듯했다.  이곳은 오래있을 곳이 못되고 다른 장소로 갈텐데 그곳은 이곳보다 두배가 넓다고 하자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강남구청역 마사지실

새로 간곳은 두배는 아니고 살짝 넓기는 했는데 그냥 빨간 벽돌 집이었다. 강남구청역 뒷부근의 선릉역 언덕 길에 주택가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여기다 세를 하나 얻어 있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장사가 잘안되는 듯 싶어 이럴 바에는 그냥 월세나 싼 곳으로 옮겨보자는 생각이 들어 주택을 골랐던 것이다.  월세는 이천에 이십 오만원이었다. 보증금을 올리면 전세로도 전환할 수 있다고 한다.

자기는 좁은데서는 절대 못산다고 하도 지랄지랄을 하길래 안방을 내주고 마사지는 코딱지만한 쪽방하고 거실에서 하게 되었다.

아프니 어쩌니 하면서 우기면 자식이기는 부모없다고 자꾸만 지게 된다. 거기다가 톰의 컴플레인은 중단되지 않았다. 나는 많은 것을 바랬던 것은 아니다.

조금씩이라도 갚으라고 했지만 다 써 버리는  성격으로 봐서 갚을 것이라고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만 나를 은인으로 생각해주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었다. 결국 그를 내쫒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그가 지랄할 때 맞장뜨면 되는 것이었다.

맞장뜨지 않아왔던 것은 아니었지만 보다 더 격렬하게 맞장뜨기로 작정했다. 그것 뿐이었다. 그는 억지가 통하지 않는걸 느끼고 집을 나갔다.

 

 

 

톰을 내보내고 나니 살 것 같았다. 넓은 안방도 마사지실로 쓸수 있고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내가 왜 그놈 뒤치닥거리하며 살았었는지 이가 갈렸다. 그가 떠나고나서야 제 정신이 들었지만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다.

지금에서야 나는 그 이유를 안다. 군겁쟁재의 사주를 타고난 이상 어쩔수 없었다. 자꾸만 뜯어먹는 놈들에게 둘러싸이는것.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 갚을 게 많은거겠지..

강남 구청역 마사지실의 손님은 점점 늘기시작했고 왠일인지 선릉역 오피스텔 보다 훨씬 나았다. 그러던 차에 을지로 6가에 전세 오피스텔이 바로 옆자리에 나왔다. 을지로 6가에 오피스텔을 두 개를 얻어 쓰는 것이 여기서 왔다갔다 하는 것보다 낫겠다 싶었다.

강남구청역의 마사지실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을지로 6가도 나쁘지 않다면 한군데로 확장하는 것이 양쪽을 두는것보다 낫겠다 판단되었다.

그래서 일년여 만에 강남의 마사지실을 모두 정리하게 되었다. 어쩌면 잘못된 판단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국은 을지로 6가의 마사지실도 문을 닫게 되었으니 말이다.

결별

상계동의 아파트 두채는 엄마가 야금야금 융자얻어서 빼서 쓰더니  몰래 팔아 버렸다.  세금 체납 된줄도 모르고 빚갚아주다가  신불자 신세가 되 내 명의로 할수 없어서 엄마명의로 해두었더니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격이었다.

나는 부동산을 찾아가 엄마와 내가 써놓았던 아파트에 대한 계약서를 보여주었다. 엄마명의로 해두나 내 아파트라는 계약서였다.

그리고 부동산 계약을 취소시켰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부동산 업주와 짜고 계약을 취소한 척하더니 다른 사람에게 팔아 버린 것이다. 이제는 대놓고 본색을 드러냈다. 하나님이 어쩌고 사랑이 어쩌고는 모두 연극에 불과했다.

 톰이 그랬듯이 이제 엄마도 떠나보내야 할 때가 되었다. 내 모든 재산이 엄마로 인해 다 날아갔으니 더 이상 뜯어먹힐 것도 없고 부모라고 할 수도  없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인연을 끊기로 결심했다. 단지 그것이 너무 늦었을 뿐이다.

 

톰의 행방

우후죽순으로 마사지 사이트가 쏟아져 나왔지만 그중에서도 나에게 마사지를  배워간후  내 사이트를 그대로 벤치마킹했던 마사지 사이트가 있었다. 근육질 남성들을 모아 운영을 해왔다.

내가 고용하고 있는 마사지사들은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마사지가 고객의 몸에 직접 접촉하는 일인 만큼 외모도 중요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마사지사가 연예인처럼 미남이어야 하거나 근육질일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그것은 마치 간호사가 속눈섭 붙이고 손에 메니큐어 칠한 것 처럼 어색한 일이다.

그건 모델들도 마찬가지의 경우에 해당했다. 상업적인 광고가 아니라면 굳이 모델들이 키가 크고 늘씬하거나 식스팩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근육질인 것 빼고는 어찌나 하나하나 따라하는지 유트부에 올린 동영상이나  구글에 등록하는 것 외국인 손님 모으는 것  하나 하나 모두 벤치마킹해나갔다.

 

 

B라고 하는 그 업체는 승승장구 하고 있는 듯했지만 나는 점점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어느날  B의 운영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톰이 거기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별로 근육 질도 아니어서 탐탁치 않았는데  이상한 짓거리 해서 내보내고 싶다는 것이다.

근육질만 모으는 친구인데 왜 그친구를 고용했는지 모르는 일이다. 톰이 나와 오래 일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친구의 취미는 나를 벤치마킹하는 것이었으니 궁금해서 채용했었던 듯하다.

선물로 톰이 내 험담을 늘어놓은 이메일을 나에게 포워딩해서 보내주었다 . 알고 있었다. 원래 그러고도 남을 놈이라는 건.

 

 

마찰과 반란

 

마사지업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던 이유는 결정적으로 마사지사들과의 마찰 때문이었다. 마사지사들이 손님에게 팁을 요구하는 등의 문제 점이 속출했다.

워낙 고가였던 마사지여서 규정상 금지했던 일이다. 지금은 5~6 만원으로 거품을 뺐지만 그때에는 한시간에 십만원을 받았다.  이상하게 한번 마사지를 받은 후 그 마사지사한테 다시 마사지 받기를 거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손님 입장에서는 자의반 타의반 팁을 주고 나서 그것을 밝히려니 욕먹을 것 같고 그래서 입을 닫은 모양이다. 결국은 귀로 들어오게 되었다.

마사지실은 마사지사에게 맡기고 외부에 있었으니 고객과 마사지사와의 사이에 어떠한 일이 발생하는지 모두 관리할 수 없었다.

마사지사들의 실력이나 외모 등은 물론이고  인격 또한 대개  기본 이하였다. 모두가 그런 것은 물론 아니었지만 한두명을 제외하고는 그랬었다고 본다.

출장을 나가고 나면 손님한테 받은 돈을  입금 한 후에 다시 일을 나갈 수 있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꼭 한번 출장 나가고 나면 소식이 없다. 몇 개월 지나서 궁해지면 다시 연락온다. 입금할테니 일달라며 부탁해온다.

 

 

어떤 마사지사는 돈이 필요해서 당분간  입금을 하지 않을테니 그냥 일을 달라며 부탁해온다.  거절했더니 빈정상했는지 그만두었다.

볼때마다 오십만원만 꿔달라고 하는 마사지사도 있었다. 안된다며 거절했더니 끈질기게 호소한다. 이러한 경우는 모델도 예외는 아니었다. 손님의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한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급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돈 좀 빌리겠다는 것이다.

일을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전화해서 일달라고 조르는 마사지사들도 태반이었다. 굶어죽는다느니 어쩌니 해서 일을 주면 삼십분이나 지각해서 손님이 돌아간 적도 있다.

그래도 도와주고 싶어서 마사지 일 없으면 집수리 할 때 부르는 등 다른 일거리를 일부러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결국 일거리 없으면 그만두겠다며  별 쓰잘데기 없는 계약서를 내놓으라고  달달 볶다가 그만두었다.

어떤 마사지사는 마사지가 끝난후 자기 돈이 삼십만원이 없어졌다며 손님한테 누명을 씌우려는 경우도 있었다. 오십세 정도 되는 마사지사였는데 신학교 다니시는 분이시란다. 척보면 거짓말인지 안다.  내가 편들어주지 않자 얼버무리며 도망갔다.

어떤 마사지사는 정말 외모는 좋았다. 사람좋게 생겼다. 물건이 하나둘씩 없어진다. 안가져 갔다고 잡아뗀다. 손님한테 40분밖에 안하고 60분 했다고 잡아뗀다.

고객이 규정에 따라 환불을 요구하자 거짓말 한다. 일본손님이었는데 누가 거짓말 하는지 눈빛을 보면 바로 알수 있다. 고객에게 환불해주고 마사지사에게는 주장한 대로 요금을 주었다.

그밖에도 나열할 수 없이 많았지만 생략한다.

외도

그리고 결국   질이 좋지 않은 놈들과 불화가 있어 나는 마사지 업을 접기로 결심했다. 경쟁업체가 많아져 점점 고객수가 줄어든 것도 원인이다.

10년간 운영하면서 잠시 슬럼프가 오기는 했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이대로는 안될 듯 싶었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다른일을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월급쟁이가 부럽기도 했다.

마사지업을 중단하고 오피스텔을 처분했다. 파리와 뉴욕에 삼개월씩 여행했다.

돌아와서 택시통역으로  일년반을 일했다 한달에 백십만원 받는 박봉이었다.

그러나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따박따박 월급받는일.. 10년간 마사지일을 해오면서 한번쯤 꿈꿔봤던 일이었다

통역회사의 일은 아침 8시 출근해서 3시에 끝난다. 집에 돌아와 저녁에는 막걸리집을 운영했다. 한달 매출 삼십만원되었으니 원가 빼고 십 여만원 벌은 셈이다.

천직

시간은 많아 한가로웠다. 저녁에는 적적한 나머지 매일 막걸리를 마셨다. 식당일이란 것이 편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편하지 않았다. 뭔가 모르게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남는 시간에 손금과 타로 역학공부를 하면서 한가지 알게된 사실이 있었다. 나에게는 마사지가 천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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