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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식아..잘 지내고 있니..나는 이러쿵 이러쿵 살고 있어. 얘는 이렇게
살고..얘는 이렇게 산다더라.. 그리고 얘는 리어카를 사다가 과일장사를 한다고 해.' 그렇게 나는
미술반 친구들의 소식을 전했다. 모두 갈곳없어 방황하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질 뿐이었다.
'학교 다닐때.. 니가 제일 멋있었는데..나와서도 계속 그렇게 살아야지. 열심히하고.. 조만간에
보자.'
처음으로 나는 그를 인정했던 것이고..착한일 한듯 마음이 뿌듯 해졌다.
그리고..그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제대해서 만난을때 내글이 재밌었다며
치하해주었다.
그는
제대했지만 방황은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무슨 시험공부를 한다고 집에서 틀어밖혀있어보기도
하고..그러다가 노가다를 한다고 하기도 하고 그랬다. 우리는 거의 만날일이 없었다. 나는
답십리를 떠나 멀리 상계동으로 이사를 갔다. 상계동은 똥호가 살고 있는 곳이었고 똥호와의
만남은 잦아졌다.

부산 서면 커피전문점 가끔 윤활유 역할을 잘하는 똥호의 주선으로 친구들끼리 모여 유원지나
동해안에 놀러간 적도 있었지만 그 이외에는 아주 드물었다.그러다 한번은 누군가의 결혼식때
친구들이 모였고 그때 갱식이를 보았다. 갱식이는 집에 한 육개월간 공부만 하고 있었는데
미칠것 같았다면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답답하다고 하소연 했다.
대학이라는 것은..뭐
다른가.. 그냥 놀러다니는 곳이 대학이다. 그렇지만..시기를 놓친 젊은이에게는 논다는 것이
낙오자로서 패배감속에서 허송세월 하는 것이고.. 알량한 대학생은 인생의 황금기를 즐기는
놀음이다.그와 나는 하나도 다를 것이 없지만 그에게는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똥호는 말재주를 살려 외판원으로 꽤 짭잘하게 돈을 벌었다. 한달에 오백만원을 번다는 것이다.
나도 그를 따라 한번 외판에 나서본적이 있었고 하루 하고 때려치웠다. 매일 배달되는 일간지
형식의 동화책 외판원이었는데 하나 팔기는 했다.
"그러니까
이게 매번 내용이 바뀌어서 온다는거네?" "네"
"하긴 뭐 동화가 읽다보면 더 읽을게 없는데 매번 새로운
내용이 오면..그것도 괜찮지." "네"
억지로 판것이 아니라 문열었더니 맘씨좋은
아줌마가 그냥 팔아주었다. 나는 가만있었는데 지가 다 설명하고 나는 묻는말에 대답이나하고
그러더니 계약이 되었다. 그렇지만 매일 하기는 좀 어려울듯 싶었다. 벨 누르기도 민망하고..
그러다가 똥호는 일본으로 유학을 갔고 신문을 돌리며 독학으로 2년제 학교를 마쳤다. 학교에
대한 컴플렉스는 결국 그를 일본까지 가게 만들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
뭣이 중헌디... 너무 오랫동안 학생들은 입시를 강요받고 대학의 환상속에 최면을 받았다.
그것이외에는 아무것도 교육받지 못했다. 그래서 학교를 떠나게 되면 그는 아무것도 할수 없게
된다. 결국 재수 삼수..이렇게..낙오.. 만일 학생들에게 대학이 전부가 아니고 또다른
방법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면 어느 누가 그렇지 않아도 힘든 공부에 매진하겠는가.
'야..너그들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녀 ..먹고 살길은 쫙 깔렸스..'
이러면 귀얇은 학생들은
'고래?
궈어어어어래?'
이러면서 공부때려치울 것이 뻔한것이다. 그러니 대학안가면 인생 막장되고
굶어죽기 딱 안성마춤이요 패배자요 낙오자며 남은 인생 종치는 것이다. 이렇게 가르쳐놓는다.
그러자니 학생들은 정말로 그길을 걷게 된다. 대학안가면 정말로 술이나 먹으면서 낙오자요
패배의길을 가는데 그것은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이며 스승이 그에게 부여한 것이기도 하다.
똥호는 일본에서 돌아온뒤 소니 영업부에 취업했는데 그냥 손님 접대나하고 제품설명이나하면 되는
편한 직업인듯했다. 오래하지는 않았고 자기 사업을 벌여 직원 삼십명 넘은 회사 사장이 되었다.
결국 일본까지 갔다온 학력은 필요가 없었던것이다. 그냥 자기 재주로 사람들 많이 만나고
설득하는 능력으로 사장이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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