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기

 

 

갱식이는 아이들을 몰고 다녔는데 그는 항상 앞장서서 걸었고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그를 졸졸 따라다녔다.

'뭐야....너 국민학교때 내짝이었는데 너무 앞서간다야..'

나는 그것이 너무 불만이었고 어째 수탉대장 쫒는 기분이 들어서 이 어색하고 옹색한 상황을 모면해볼까 고심하였지만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별수 없이 무리의 맨 뒷줄에서 도살장 끌려가는 것처럼 졸레졸레 따라다녔다. 경식이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듯했다. 항상 팔뚝에 하나 완장 찬듯이 행동했고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그가 그렇다고 해서 무슨 완력을 행사했다거나 잘난척+ 권력을 남용하고자 하려는 못된 의도는 엿보이지 않았다.

갱식이는 기본적으로 품행이 되었기 때문에 아이들도 좋아하고 따를수 있었다고 본다. 남에게 싫은소리는 절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언제키웠는지 좌중을 갑자기 웃게 만드는 유머감각도 가지고 있었다.

쟤가 저렇게 웃긴애가 아니었는데...나도 좀 웃긴다 소리 듣는 편이었지만 그의 유머감각은 특출났다.

 

부산 서면 재래시장 떡복이



우연치고는 특이하게도..미술반 친구 8명중 다섯명은 모두 같은 동네 살았다. 영화를 보러가거나 농구를 하거나 분식집에 가거나 할 때에도 언제나 갱식은 앞장섰고 우리는 그를 따랐다. 어찌보면 편한 것이기도 하고 그의 리더싶에 그냥 순응하면 그만인 문제였으리라.

그런데 뭐가 문제였을지....마음속에 나는 칼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저 윗대가리를 언젠가는 댕강 자르고 말리라..이건 친구관계가 아니잖아. 친구란 평등한 관계고 허물없는 관계이리라. 무슨 조직도 아니고..이거..

갱식이는 또하나 못된 습성이 있었는데 돈을 물쓰듯 한다는 것이었다. 친구들과 같이 놀면서 이집저집 먹으러 다니면서 그 돈을 다 자기가 계산한다는 것이다. 뭐 우리끼리는 별로 그래본건 없는것 같은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랬다.

갱식이네 집 역시 우리동네에 있었다. 드라마 보면 꼭 착한 여자주인공이 허름한 달동네 옥탑방에 전세내서 살고 그 여자한테 꽃힌 재벌 이세가 그녀를 만나러 달동네로 찾아온다. 그런집이었다. 뭐 우리집도 별다를것은 없었고 그 당시는 다 그랬었지만 그래도 그중 남루했던 집에 속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집이 마음에 들었다. 귀뚜라미 우는 목초가 우거지고 저 아래 동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전망..넓은 마당이 있어 살고싶은 그런 집이었다.

엄마는 과일장사를 했다 하루벌어 하루먹는 그런 장사였지만 갱식이 엄마는 갱식이가 달라는대로 듬뿍듬뿍 용돈을 주는 듯했고 그돈을 경식이는 유흥에 쏟아부었다. 어쩌면 갱식이의 지나친 자신감은 그렇게 넉넉한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었을 것이다.

국민학교때에 그가 나한테 이유없이 쏟아부었던 신경질은 서서히 재발되었다. 뭐가 불만이었을까? 아마 모두가 그를 따를 때 혼자 따로 놀려는듯한 내가 못마땅했을 것이다. 티났나? 그런건 아닌듯했는데..


8

 

처음에는 엉망진창이었던 그림들이 한 육개월 정도 매일 미술실에 남아 그림을 그리자 눈에 띄게 실력이 향상되기 시작했다. 나뿐만 아니라 몇몇 두각을 나타내는 친구들이 있었고 그중에는 갱식이도 있었다.
해도 해도 안되는 경우는 동호(가명) 같은 케이스였다.

고2때 후반이었을까 선배들은 나오지 않고 우리들이 미술실을 맡게 되었으며 후배들을 지도해야 했다.반이 갈라지고 이제 그와 나는 만나는 날도 많이 줄어들었다. 미술부에 나오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어가고 있었다.

똥호는 갱식이에게 할말이 있다며 미술실에서 모두가 모인자리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혔고 갱식이는 펄쩍 뛰었다.이제 곧 고삼올라가고..공부해야 할때이니 미술반에는 나오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시간나면 나올것이며 가끔 들르는 정도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갱식이는 안되다며 거세게 반대했다.

금융센터 건너편 골목 백반집



"너 그럼 미술반 탈퇴해 !"

"싫어."

"그럼 나오던가 아니면 그만둬"

"그건 내맘이야. 니가 그만두게 할수있어?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봐."


니가 반장이면 반장이지 뭐 그럴권한까지는 없다는 뜻이었다. 갱식이는 입을 닫았다. 똥호는 말재주가 비상한 놈이었다. 성적은 바닥이었지만 아이큐는 138이고 졸업후 한동안 외판원으로 먹고 살았다.

나는 전적으로 똥호를 싸고 돌았다. 갱식이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한쪽 편은 들어야 할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의 수탉짓거리에 도전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9

 

 

내가 감싸고 돌아서 그랬는지 똥호의 고집이 셌었던것인지 어쨌든 경식이는 포기했고 별말이 없었다. 그리고..몇달 뒤였던것 같다.

수탁을 쫒는 무리들 중..병든 닭이 한마리 보였다. 미술부에서 키도 제일 작고 말을 더듬는 현철(가명)이라는 친구가 한명있었다. 얼굴은 늙어보여서 뭐 그리 만만해 보이는 포스는 아니었다.

며칠사이 계속 어깨가 축쳐서 다니는 것이다. 뭔가 있는 것 같아 캐물으니 현철과 경식이가 서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말을 들어보니 경식이가 좀 심하지 않았나 싶어 나는 또 전적으로 현철의 편을 들었다.

"아니 갱식이가 잘못했네 그러면 안되지.."

그리고 며칠뒤였다. 운동장에서 평행봉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수탉이 나타났다. 마침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마치 내가 거기 혼자 있는걸 알고 찾아온듯했다.

"허일..좀 할말이 있어. "
"뭔데.."
"너 그렇게 살지마. 내가 생각하기엔 넌 이러쿵 저러쿵 하고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저러쿵 저러쿵 한 인간이야. 앞으로 인생 똑바로 살어. 요로케 조로케 좀 살아봐."

나는 얼굴이 벌개지고 다리가 후들 거렸다. 그에게 더이상 벌개진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아 성급히 뒤로 돌아 그를 떠났다.

가끔씩 그와 내가 케미가 맞지 않는 적은 물론 있었지만 이렇게 작정하고 따지러 온것은 나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이었다. 너 한번 해보자는 거야..뭐 이런 뜻이겠지.

그의 수탉 짓에 나는 대항할 힘이 없었다. 그리고 그가 이겼다고 판단했다. 뭐 이기고 지고가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지만 뭐랄까..저항할수도 없고 그냥 져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불쾌감에 그냥 돌아섰던것이다.

부산 금융센터 건너편 백반집 돼지국밥


며칠뒤였다. 친구들이 우리집을 찾아왔다 갱식이가 한턱 쏘겠다는 것이다. 갱식이가 사과하려는 듯했다. 근처 분식집에서 떡복이를 먹으면서 나는 뭐라뭐라 주절거리면서 내 생각을 전했다.  뭔얘기 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되지도 않는 소리였던것 같다. 별로 와닿지도 않았을듯한 말에  갱식이는 그냥 맞다고 해주었다. "그래.."

그리고 친구들이 같이 온사연을 이야기 하며 갱식이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일아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이야기 했어. 갱식이하고 현철이하고 문제는 서로 해결할 문제고 일이는 아무 잘못없는데 괜히 일이한테가서 뭐라고 한 니가 잘못아니냐. 그랬더니 그 말이 맞다고 화해하자고 해서 온거야 "

 뭐 화해를 하건 사과를 하건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살다보면 티격태격할 수도 있는것이 친구아닌가. 나는 왜 그렇게 그의 공격에 당황했는지 모르지만 그럴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를 원망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단한가지.. 나 또한 갱식이를 어느정도는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느꼈다. 더이상 그에게 도전하는 짓은 서로를 위해 피해야 한다. 그게 그를 위한 예우이자 배려일 것이다. 누군가 잘난척하면 그래너 잘났다 해주는것이 예우이지.. 지랄하고 있네..하면 서로의 관계는 깨지는 것이리라.

그렇게 우리는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고 우리들의 관계는 정상화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의아한 점이 있다.

어떻게 친구들이 그 사실을 알았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최근까지도 .. ..낮말은 새가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나와 갱식이가 다툰걸 친구들이 귀신같이 우연히 알게 되어.....마치 텔레파시처럼 공중에 둥둥 떠다니다가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서 알게 된줄 알았다.

그래서 친구들이 갱식이를 탓하고 갱식이가 결국 친구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사과하러 온줄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일에 대해서는 무척 둔하다. 그런일이 있을수 있겠는가?

나는 아무에게도 그사실을 이야기 하지 않았었다. 그자리에는 아무도 없었고 갱식이와 나밖에 몰랐던 것이다. 결국 갱식이가 친구들에게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스스로 고백했다는 것이다.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쩌면 좋겠냐고 고백했을 것이고 그리고 친구들의 격려를 받아 사과하러 온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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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입시가 코앞에 다가왔다. 나는 저녁마다 입시미술학원에 다니느라 친구들을 만날 시간도 없었다. 일요일도 화실에 나가는 것은 물론이었다. 친구들의 소식을 들으니 공부는 뒷전인듯 싶었고 갱식이도 예외는 아닌듯했다 놀러다니기 바쁘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미대에 진학했고 친구들은 모두 전원 전멸이었다. 시험이 특히 어려웠다며 한반에 4명인가 5명인가 합격했고 그중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다.

입시가 있기 몇달전..어느날 담임선생님이 7명을 호명하여 교무실로 불려갔다 교무실인지..상담실인지..뭐 어디에 우리들은 모여 앉았다. 그중에는 축구부도 두명있었다.


어떤 7명이었을까? 잘생긴 순위 7명?

근엄한 표정의 담임 선생님이 눈을 내리깔고 입장하셨다.

"너희들이 뒤에서 7등 이야 니들 진짜 이따위로 할거야?"

부산 서면


아니 예체능계가 그럼 성적 바닥이지..어쩌라구..매일 그림그리는데 빼줘야지 이 선생님 꼴통아냐?


그 뒤로도 선생님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무슨 대화가 오갈라 치면 말을 딱딱 끊었다. 무슨 썩은 생선 보듯이 취급하는 것 같았다. 입시가 끝나고 선생님은 내가 대입 합격자 고작 4명중에 한명이라는 것을 알고 저으기 놀란 모양이다.

조회때 운동장에 줄서있는 곳을 비집고 나에게 다가왔다.

"너 합격했다며?"
"네."

"그럼 말을 해야지 이놈아 !"

..헐.. 관심도 안갖더니.. 지금까지 내가 학력으로 밥먹고 산것도 아니고 그 잘난학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만..그건 가지고 있는자의 여유일 것이며 가지지 못한사람은 또 생각이 다를 것이라 본다. 특히나 문턱에서 좌절되고난지 얼마안된 몇년간은 큰 고통으로 다가올것이다.

갱식이는 재수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지만 이젠 술까지 배워 매일 술이나 먹고 당구나 치러다니다가 비싼 학원비만 탕감했다.발빠른 똥호는 전문대를 갔는데 4년제 대학에 넘어설수 없는 컴플렉스를 느낀다고 고백했다.


재수에서도 낙방하고 갱식이는 군대에갔다. 육군으로 갔는데 글씨를 잘써서 행정반으로 배치 되었다. 겉으로 보면 그는 바른 생활사나이였다. 윗사람의 총애를 받아 말뚝박자고 유혹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도저히 할수 없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에게는 지겨웠겠지만 밖에있는 나로서는 시간이 휙휙 흘렀다. 제대가 6개월쯤 남았을때였나..그에게 위문편지를 한통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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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식아..잘 지내고 있니..나는 이러쿵 이러쿵 살고 있어. 얘는 이렇게 살고..얘는 이렇게 산다더라.. 그리고 얘는 리어카를 사다가 과일장사를 한다고 해.'


그렇게 나는 미술반 친구들의 소식을 전했다. 모두 갈곳없어 방황하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질 뿐이었다.

'학교 다닐때.. 니가 제일 멋있었는데..나와서도 계속 그렇게 살아야지. 열심히하고.. 조만간에 보자.'

처음으로 나는 그를 인정했던 것이고..착한일 한듯 마음이 뿌듯 해졌다. 그리고..그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제대해서 만난을때 내글이 재밌었다며 치하해주었다.

그는 제대했지만 방황은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무슨 시험공부를 한다고 집에서 틀어밖혀있어보기도 하고..그러다가 노가다를 한다고 하기도 하고 그랬다.


우리는 거의 만날일이 없었다. 나는 답십리를 떠나 멀리 상계동으로 이사를 갔다. 상계동은 똥호가 살고 있는 곳이었고 똥호와의 만남은 잦아졌다.

부산 서면 커피전문점


가끔 윤활유 역할을 잘하는 똥호의 주선으로 친구들끼리 모여 유원지나 동해안에 놀러간 적도 있었지만 그 이외에는 아주 드물었다.그러다 한번은 누군가의 결혼식때 친구들이 모였고 그때 갱식이를 보았다.
갱식이는 집에 한 육개월간 공부만 하고 있었는데 미칠것 같았다면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답답하다고 하소연 했다.


대학이라는 것은..뭐 다른가.. 그냥 놀러다니는 곳이 대학이다. 그렇지만..시기를 놓친 젊은이에게는 논다는 것이 낙오자로서 패배감속에서 허송세월 하는 것이고.. 알량한 대학생은 인생의 황금기를 즐기는 놀음이다.그와 나는 하나도 다를 것이 없지만 그에게는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똥호는 말재주를 살려 외판원으로 꽤 짭잘하게 돈을 벌었다. 한달에 오백만원을 번다는 것이다. 나도 그를 따라 한번 외판에 나서본적이 있었고 하루 하고 때려치웠다. 매일 배달되는 일간지 형식의 동화책 외판원이었는데 하나 팔기는 했다.

"그러니까 이게 매번 내용이 바뀌어서 온다는거네?"

"네"

"하긴 뭐 동화가 읽다보면 더 읽을게 없는데 매번 새로운 내용이 오면..그것도 괜찮지."

"네"

억지로 판것이 아니라 문열었더니 맘씨좋은 아줌마가 그냥 팔아주었다. 나는 가만있었는데 지가 다 설명하고 나는 묻는말에 대답이나하고 그러더니 계약이 되었다. 그렇지만 매일 하기는 좀 어려울듯 싶었다. 벨 누르기도 민망하고..


그러다가 똥호는 일본으로 유학을 갔고 신문을 돌리며 독학으로 2년제 학교를 마쳤다. 학교에 대한 컴플렉스는 결국 그를 일본까지 가게 만들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

뭣이 중헌디...


너무 오랫동안 학생들은 입시를 강요받고 대학의 환상속에 최면을 받았다. 그것이외에는 아무것도 교육받지 못했다. 그래서 학교를 떠나게 되면 그는 아무것도 할수 없게 된다. 결국 재수 삼수..이렇게..낙오..
만일 학생들에게 대학이 전부가 아니고 또다른 방법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면 어느 누가 그렇지 않아도 힘든 공부에 매진하겠는가.

'야..너그들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녀 ..먹고 살길은 쫙 깔렸스..'

이러면 귀얇은 학생들은

'고래? 궈어어어어래?'

이러면서 공부때려치울 것이 뻔한것이다. 그러니 대학안가면 인생 막장되고 굶어죽기 딱 안성마춤이요 패배자요 낙오자며 남은 인생 종치는 것이다. 이렇게 가르쳐놓는다. 그러자니 학생들은 정말로 그길을 걷게 된다. 대학안가면 정말로 술이나 먹으면서 낙오자요 패배의길을 가는데 그것은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이며 스승이 그에게 부여한 것이기도 하다.


똥호는 일본에서 돌아온뒤 소니 영업부에 취업했는데 그냥 손님 접대나하고 제품설명이나하면 되는 편한 직업인듯했다. 오래하지는 않았고 자기 사업을 벌여 직원 삼십명 넘은 회사 사장이 되었다.


결국 일본까지 갔다온 학력은 필요가 없었던것이다. 그냥 자기 재주로 사람들 많이 만나고 설득하는 능력으로 사장이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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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또 어려운 자리를 하나 만들었는데 어떻게 가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미술반 친구들은 없었고 갱식이와 몇몇모르는 친구와 함께 종로의 한 술집에서 만났다. 그중에는 여학생 두명도 끼어있었다. 그리고 갱식이는 그때도 수탉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날도 모든 계산을 혼자 치루기로 한 갱식이는 탁자의 맨 끝에 보스처럼 앉아있었고 나는 앞에 앉은 두 여학생들과 노닥거리면서 말장난을 나눴다.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인지 흥이오르자 갱식이는 혼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즈막히 구성지게 눈을 감고 자기가 부르는 자기 노래에 취해 있었다.

노래라면 나도 빠지지 않는데 경식이도 취미가 있을줄은 몰랐다. 경식이는 팔방미인이었다. 단지 조소거리가 없을 뿐이었다. 그는 그림이면 그림 노래면 노래..못하는 것이 없는 친구였고 말하자면 나와는 라이벌 관계일지도 몰랐다. 상은 내가 다 휩쓸었지만 그는 단지 상복이 없었을뿐 그림도 상당한 실력이었다.


술자리가 끝나고 헤어지면서 갱식이가 나를 붙들고 이야기한다.


"허일..앞으로 우리 친하게 지내보자. 내가 니가 원하는거 다 해줄게..사달라는거 다사주고..뭐든 내가 다 살게..그냥 가깝게만 지내줘."

나는 아무말없이 그와 헤어졌다. 그리고 그때가 그와 마지막이었던것 같다. 나는 그냥 한귀로 흘렸고 뭐 빈말로 한것이라 생각했다.그가 왜 그런말을 했는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할수도 있다. 너무 가까웠던 사람이 갑자기 멀어졌을때 그가 갑자기 그리워질 때가 있다. 어쩌면 갱식이도 갑자기 멀어진 내가 그리웠었던 것 같다.


갱식이와 마지막 이후..일년정도 지났을 때였을까..동호가 찾아와 소식을 건넸다.


"일아..경식이 죽었어. 교통사고로.. 술마시고 횡단보도 건너다가 차에 치었는데 무면허에 음주운전이었대. 그래서 나 경식이 장례식에 갔다왔어."


"뭐?..."

나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슬프지도..애석하지도 ..가슴아프지도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 나는 친구를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교때 사귀던 친구도 끊었고 동호도 결국 내곁을 떠나갔다. 나는 홀로서야 한다고 생각하고 앞만 보고 달렸다. 친구는 방해만 될 뿐이었다.영화같은데 보면 동료가 죽으면 억지 눈물흘리고..그러는데 별로 공감가지도 않았다.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현대사회에서 친구하나 죽어나가는게 뭐 대수일까..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인 셈인데..

그리고 이제 삼십년이 흘러 나는 오십세가 되었다. 내주위에는 아직도 아무도 없다. 평생을 나는 이렇게 도시속의 자연인처럼 혼자서 고독하게 늙어 죽을것이다.문득 이제와 떠오르는것은 어쩌면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것은 평생을 같이해 줄 친구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만일 나에게 평생을 같이할 친구를 누릴 자격이 주어진다면..그리고 단 한사람만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는 바로 경식일 것이라 생각한다.그는 이미 그 기회를 나에게 주었었지만 나는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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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경상도의 기억들을 뒤로하고..나는 이제 경상도에 발을 딛기로 결정하였다. 처음 가보는곳 ..멀리 가보는곳.. 경식이의 고향....그곳에 나는 막연함을 안고 몸을 던졌다.

부산역에 내리니..서울공기와 뭔가 다른 느낌을 감지할수 있었다. 바닷바람인지 서울보다 살짝 습기가 많고 부드러운듯한 공기.. 그것은 경상도 사람들의 성격과도 비슷해보인다.

경상도 사람들은 부드럽다.뭥미? 갱상도 사람이 부드럽다꼬? 니 대구빡에 총맞았나. 그렇다. 경상도 사람들이 사납다 억세다..뭐 이런 말들은 편견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어딘가 모르게 부드러운 면이 있다.

한가지를 보고 열가지를 직감하는것..그것이 바로 점의 원리일 것이다. 반드시 점쟁이가 아니더라도 직관력이 발달하면 남들이 모르는 것을 예측할수 있게 된다.

 

부산서면

점이라는 것은 어디서 신이 귓속말로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우연이라는 것이 없으며 모두 연결 연결 되어있다. 물속에는 물고기가 살게 되어있으며 하늘에는 날개를 단 새가 살게 되어있는것이다. 그것이 바로 직감이라는 것이다.

부산역은 깨끗했고 생각보다 깔끔함에 놀라는 나자신이 우습게 느껴진다. 혹시 70년대 청량리 정도 될거라고 생각했어? 그럴리가 없지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하긴 그렇게 생각할수 밖에 없는것이..종로만 가도 노후한 건물들이 수두록 하기 때문이다. 깔끔한것을 원해 부산을 온것은 물론 아니다. 원래 좀 어수선한것에 매력을 느끼기는 하지만 깔끔한 부산이라니... 뭐 나쁘지 않다.

비린내나는 부둣가를~~ 비겁하다~~욕하지마~~ 뭐 이러면서..70년대 만화속에 나오는 그런 시장골목을 연상했다면 기대는 접어야 할것이다.

뒷골목을 걸으니..노후하거나 지저분한 건물이 하나도 없다. 전봇대는 모두 파랗고 이쁜 그림이 인쇄된 고무로 둘러쌓여 광고물이 붙어있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큰일이다. 전봇대 광고좀 해볼 참이었는데..우선 휴대폰 충전을 하기 위해 커피숍을 찾았고 이디야 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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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가장 내가 관심을 기울였던것은 부산말이었다. 사투리라는 말은 왠지 좀 서울 줌심의 의미처럼 느껴지니 부산말이라 칭하겠다. 과연 요즘같은 국경없는 시대에 부산에는 부산사람만 살까? 그리고 부산사람들은 정말 부산말만 쓸까?


파리와 뉴욕에 갔을때에도 그점이 궁굼했었다. 과연 파리에는 불어를쓰고 뉴욕에는 영어를 쓸까? 당연히 그렇겠지..그런데 그게 당연하게 느껴지지가 않는것이었다. 하루아침에 파리에서 뉴욕으로 건너가니 지역이라는 것이 의미없게 느껴진다.

그러니 꼭 파리에서 불어를 쓰란법없고 미국에서 영어를 쓰란법 없을것 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정작 가보니 미국에서는 영어를 쓰고 파리에서는 불어를 쓰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국경도 아니고 한나라 안에서의 경계에 불과하다. 부산에는 정말 부산말을 쓸것인가. 제발...부산사람은 부산말만 쓰기를...
그래야 멀리온 보람이 있을 것 아닌가. 미국에 갔는데 백인은 없고 흑인만 잔뜩있거나 아프리카에 갔는데 흑인은 없고 백인만 잔뜩있으면 맥빠질 것이 분명하다. 비행기값 아까울 것이다.

부산 서면 부페식당

 

멀리온 만큼 그곳에는 서울과 차별화된 세계가 있어야 할것이며 그것의 가장 큰 척도는 바로 얼마만큼 많은 사람들이 부산말을 쓸것인가가 관심사가 아닐수 없었다.


"뭘로 드릴까예..."


"복숭아티 한잔 주세요."


"선불이고예..."


뭐 정확히 이렇게 쓰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부산말은 맞았다.복숭아 티를 받아들고 안쪽 테이블에 자리잡고 앉았는데 오른쪽에 다섯명의 5-60대 남성들이 앉아있었고 왼쪽에는 두명의 여고생이 앉아 서로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고 있다.


눈치채지 않게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보니 모두 부산말을 쓰고 있다.잠시후 두명의 사십대 남성이 내 앞자리에 자리잡아 앉았는데 역시 부산말..더 볼것없다. 첫 대면한 10명 남짓의 사람들이 모두 부산말을 썼다면..부산에는 부산말 쓰는 사람이 태반일 것이라는 직감이 꽃혔다.기대에 벗어나지 않았으니 우선 부산 입성의 첫번째 관문은 성공한셈.


이제 두번째 관문으로 보금자리를 잡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또한 기대에 따라줄 것인가. 집못구해서 찜질방 전전하다가 개털날리면서 서울로 쫒겨오는것은 아닐까?


부산역 건너편의 로데오거리를 잠시 둘러보니 그리 멀리 돌지도 않았건만 마사지업소가 대 여섯개 눈에 들어온다. 이런곳에 들어올만큼 자금도 되지 않을뿐더러 들어왔다치더라도 경쟁에서 버티지못할 것이 틀림없다. 비싼 월세만 내다가 쪽박차고 문닫을 것이 뻔하지...


장사라는건 말이야..수십억 거덜내기 딱 좋은 거미줄 같은것이 바로 임대계약이라는 거지..멋도 모르고 들어갔다가 다털리고 빛만 잔뜩지고 나오는거..내가 모를줄 알고? 장사 한두번하나? 왜 가게문앞마다 일수 당일대출 사채 명함이 잔뜩 뿌려져 있을까? 걍 구경삼아 둘러본뒤 첨에 찍어두었던 국제금융센터역으로 가기위해 지하철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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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지하철은 서울하고 똑같았다. 그리고 그안의 사람들도 서울사람과 특별히 다르지는 않았다. 미술전공자이고 밥먹듯이 그리는것이 사람인지라 마이크로 0.0000099의 미세한 차이까지 잡아내는 나노 소머즈 눈깔을 소유했건만 특별한 차이는 구별해낼수가 없었다.


아니 있기는 있었지만 말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그렇지만 지하철에서도 부산말이 오가고 있는것은 확실했다.금융센터에서 내려 찍어두었던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여기 금융센터 역인데요. 월세35 라고 나온 상가건물 보고 전화드렸거든요."

"여기는예 지하철에서 멀고예. 버스타고 한참 와야되는곳이고예. 지금 있을지도 모르고 확인해봐야되는데에.."

"아네.."

어쨌든 가보고는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반기지 않는듯하여 다른곳에 전화..받지 않는다. 세군데 모두 받지 않는다. 큰일났다. 찍어둔 전화를 모두 받지 않으니..뉴욕에 갔을때 방찾느라고 허둥지둥했던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다행히 뇌리를 스치는 것이 널린게 부동산 아닌가. 부동산 정보지 굳이 볼필요 없다. 크게 도움안된다. 그냥 부동산을 찾아가는 것이 훨씬 빠르다.


국제금융센터역에 내리니 바로 코앞에 겁나게 큰 빌딩이 하나 눈앞에 펼쳐진다. 너무높아서 이거 끝까지 쳐다보는데 이만원 받을거 같은 그런 빌딩이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 건물 바로 옆에 어우러져 있는 어느 빌딩안으로 들어갔다. 유리로 된 빌딩인데 이곳에다가 자리잡으면 장사잘될것 같은 그런 건물이었다.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 처럼 쪼각쪼각 나누어진 방들이 있고 입점한 곳은 커피숍이나 일식집 뭐 그런것들이 보이고 비어있는곳도 꽤 된다.부동산이 같은층에 있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싼게 이천에 백이십이란다. 자리값 하는 모양이다. 내수준에 맞는 곳은 아니다. 건물을 나와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려는데 바로 맞은 편에 부동산이 하나 보인다.

"뭘 하시려는데예."


"마사지요. 뭐 한 천에 오십정도면 될것 같은데.."


"상가면 좋구요. 없으면 오피스텔이라도..."

부부는 서로 이것저것 상의하더니 쓸만한 장소를 선점하기 위해 잠시 머리를 굴리는듯하더니..바로 근처의 한 오피스텔로 나를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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