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촌 일기

2020 4 20 ~ 2021 4 20



딱한번 그가 내 팔을 뒤로 잡아 끌었을 때가 있었다. 내가 굴삭기 근처에 가까이 다가가 있으니 위험해 보였나보다. 그리고 술마실 때 갑자기 내 옷에 손을 쑥 집어넣은 적도 한번 있었다.

그렇긴 하지만 그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람의 오지랍 섞인 화통한 성격은 아니어 보였다. 좀 후에 알게 되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상당수의 점촌 사람들이 경상도라기 보다는 충청도의 성격에 흡사하며 그와 같았다.

앞에 앉은 학생 두 명은 어찌나 말이 없는지 정말 하루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아 저러다 죽는 거 아닐까 걱정되었는데 다른 점촌출신의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반면에 안소니는 주변 사람들과 말섞기를 좋아했고 오지랍 레벨 100을 훌쩍 초과했다. 소니는 점촌 출신이었지만 좀 말이 많다 싶은 사람들은 오히려 외지 사람들이었고 점촌 사람들은 조용한 편에 속했다.

곤잘레스도 외부출신이었는데 그는 쉴새없이 누가 듣건 말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주로 내가 얼마나 위대하며 내가 얼마나 특이하며 내가 얼마나 뛰어난가 하는 것들이었다.

굴삭기 시험은 필기와 실기로 나누어지는데 필기시험이 쉽지 않다. 운전면허 필기시험 정도의 수준이 아니고 복잡한 기계를 어느정도 이해해야 될만한 정도이며 합격이 쉽지 않다.

필기는 한방에 붙었고 안소니와 테리우스도 모두 통과했다.

나는 실기보다는 필기가 더 걱정이었고 굴삭기 운전이라는 것은 현장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시험은 그닥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실기는 주행과 굴착으로 나누어지는 데 주행은 에스자 곡선 하나만 전후진 하면 끝난다. 굴착은 4분 내에 왕복 네번만 흙을 퍼다 나르면 되는건데 하나도 어려울것이 없어 보였고 나는 잘한다고 칭찬받는 편이니 필기만 합격하면 굴삭기 자격증은 따논당상이라 생각했는데 큰 착오였고 결국 고배를 마셨다.

시험은 퍼다나르는 것 만이 문제가 아니고 기계가 흔들리거나 흙을 덜푸거나 시간초과를 하거나 높낮이가 범위를 벗어나거나 하면 탈락하게 되는데 뭐 그 정도 쯤은 우려가 되지 않았다.

시험장은 학원에 있는게 아니고 문경을 벗어나야 되는데 첫날 알버트의 차를 얻어 타고 두시간이나 걸려 시험장에 도착해보니 신분증을 안가져온게 아닌가 !

알버트가 누구냐고? 학원 다니는 동안 그의 차를 얻어탔는데 작달만한 키에 미남형이었고 알버트라 칭하겠다. 조용하고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첫날 그렇게 죽쑤고 나는 약속한 뒷풀이 장소에 나갔다.

한턱 쏠테니 우리집에서 모이자고 했는데 알버트의 반대로 집밖에서 만나기로 했고 나가보니 테리우스도 나와 있었다.

그 자리는 덫이었다. 나를 괴롭히기 위한 자리였나보다. 집딴 따돌림..뭐 그런거겠지.

발단은 곤잘레스였고 알버트가 부추킨 모양이었다.

나는 남의 사주를 공짜로 봐주지 않는다. 몇번의 악재를 만난 다음부터는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돈받고 봐주어야 하는것이지 절대로 그냥봐줘서는 안된다는 것이 철칙이 되었다.

그것은 내가 세운 원칙이 아니고 원래 그런것이다. 사주 관상은 무료로 봐주면 안된다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누군가 당신 얼굴보고 눈섭이 짧네 코가 삐둘어졌네 광대가 튀어나왔네 하면 감사는 커녕 욕만 바가지로 먹을 것이 뻔한 것이다.

그런데 관상가가 돈도 안 받고 그런 이야기 할수 없으니 당연히 사주 관상은 좋은말만 할 자신 없다면 돈을 받아야 하는 것이고 사실 사람 얼굴 보고 좋은 말만 하기 쉽지 않다.

절반은 남들하고 똑같이 생겼고 절반은 다 이상이 있게 생겨 먹은게 사람얼굴이고 사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뭔지는 모르지만 그러한 개념을 넘어서 좋은 말만 했다치더라도 남의 사주나 관상을 공짜로 봐주면 반드시 해가 돌아온다.

그것은 직감적으로 많이 경험한 바이고 어쩌면 천기누설과 관련이 있을 것이리라.

내가 마사지 손님들한테 무료로 사주를 봐주는것은 아주 기초적인 것에 불과하다. 즉 스스로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에 불과하며 만세력만 알려주는 것에 한한다.

그런데 그 때 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배운 것들을 써보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고 보는 사람마다 붙잡고 생년월일 물어보기 바빴다.

"함 봐주세요. 제 관상이 어떤가요?"

어떡하지.. 좋은 점은 안보이고 안좋은 점만 눈에 띈다. 최대한 좋게 말해보려 포장을 해봤는데 실패한것 같다.

"눈이 너무 크면 재물이 새요."

기대에 찼던 곤잘레스의 얼굴이 굳는것이 보였다.

그 이후 곤잘레스는 감초영감 한분하고 한패가 되서 사사건건 내 행동에 딴지를 거는 듯 싶더니 뒤에서 내 악담을 하고 다녔던 모양이다.

무마좀 해보겠다고 어깨를 두드리며 턱이 커서 말년운은 좋겠다고 해주었지만 별로 약이 되지 못한듯했다.

'병주고 약주니 시파..'

어쨌든 좋은말만 했줬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으리라.

술이 무르익는 찰라 곤잘레스와 알버트의 본격적인 가스라이팅이 시작되었다.

"부모님도 서울 사람이야?"
"아유 아니지... 뭐 다 따지면 누가있어"


곤잘레스의 이상한 망발중의 하나가 다시 되풀이 되었다.

누구는 진짜 서울 사람이고 누구는 서울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개나 소나 다 서울 사는데 서울사는게 무슨 자랑이라고 듣는 서울 사람 민망하게 그러시는지..

그래서 당신은 서울 어디살았느냐고 하니 동대문 이란다.

동대문이 다 시장골목이고 빌딩인데 사람사는 곳이 있는 줄아나..

서울사람 콤플렉스가 있어 망발을 하신 모양인데 그렇게 보면 해외 영주권자니 어쩌니 하는 말도 모두 구라가 틀림없다.

미국에서는 교회에서 동성애자 결혼식 주례 안서주면 경찰이 와서 잡아간다나 남들 다아는 이야기를 꼭 혼자 아는것 처럼 떠들어대는 걸 보면 대개 그의 영웅적인 과거사는 역시 모두 남한테 주워들은걸 적절히 조합한 것임에 틀림없는데 기억력은 좋고 말발은 되는 모양이었다.

"아니 행님은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요. 어떻게 곤잘레스 한테 대놓고 말많다고 할수 있어요?"

그동안 어처구니 없는 뒷담화 엄청 해댔다는걸 실토라도 하듯 알버트가 대놓고 공격에 나섰다.

"아.. 그래서 기분 나쁘셨어요?"

나는 곤잘레스에게 정중한 사과의 표현을 건네고 그의 안색을 살폈다.

하루는 학원생이 몇명 안나왔는데 많이 조용하길래 분위기좀 띄우자고 그런 말을 던진 적이 있었다.

"여기 말많으신 분 한분 있었으니 망정이지.."

곤잘레스 없었으면 완전 썰렁할 뻔했다고 칭찬 해준 말이었다.

지는 다섯살 어린 동생한테 너 이번에 한번 더 떨어지면 나한테 죽는다고 했다고 해놓고 내가 열살이나 어린 동생 말 많아서 말 많다고 한 건 거슬린다니 사과해주어야 하나 ?

굳이 사과할 필요도 없지만 사과가 불충분 하다는 듯 곤잘레스는 큰 눈을 부릅뜨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팔 피고 이야기 하라면서 알버트가 팔짱을 끼고 있는 내 팔을 아래로 내리친다.

나는 예약이 있어서 가봐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버트는 게이였고 남성미 작렬하는 테리우스에게 급관심을 보여왔다. 테리우스와 내가 가까워지는걸 무척 경계하는 모양이었다. 질투난다는데 빠져줘야지 어쩌겠는가.

그래도 알버트와 곤잘레스는 실기시험에 합격했고 테리우스와 안소니는 탈락이었다.

나는 이제부터 테리우스의 차를 빌려타고 다녀야 할 입장이고 그러자면 그 자리에서 다투고 나와서는 안되니 우선 조용히 자리를 피했던 것이다.

뭐 거기서 소시오패스 들하고 싸워봐야 개싸움 될거 뻔하니 상대 안하는것이 상책이기도 했다.

시험 날자가 다가왔고 테리우스의 차를 탔더니 돌려따는 커피를 하나 건넨다. 이런건 내가 준비해야 했는데 거꾸로 됐다. 시험 끝나고 밥이나 좀 사야겠다.

"지게차 자격증은 왜 따려고 하세요? 월급 얼마 안되는것 같던데... "

"마사지는 퇴근하고 집에와서 해도 되니까 해볼려고요."

"이동네 일자리가 그렇게 많지 않은데 서울에서 여기까지 왜 오셨어요? "
"그냥.. 딴데 좀 살아보고 싶어서..다시 가야죠. 자격증 따고 나면. .."

나도 연습 때는 잘한다 칭찬 받았고 테리우스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나보다 테리우스가 더 안정적이었고 테리우스가 시험에서 떨어졌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늘 두번째 시험인데 테리우스는 긴장감이 역력해보였다.

그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해 나는 전국 노래자랑 참가 신청서를 보여주었다. 마침 점촌에 왔던 것이다.

"같이 한번 안나가 보실래요? 머리도 기르시겠다. 키타 하나 딱 차고 락 같은거 하나 하면 죽이시겠는데..."

하필 그날 따라 선그라스까지 끼고 나와 딱 가수하면 되겠다 싶다. 끝나고 어디 선보러 가는지 누구 기 죽이기로 작정 했는지 갑자기 살도 쫙빼고 근육만 남았고 금방 산 듯한 옷은 윤이 반짝 반짝 났다.

"노래 못해예"

전국 노래자랑 뿐아니라 점촌에는 가요제가 많았다.두어번 참가했다가 다 떨어졌다. 그렇게 외웠건만 중간에 가사 까먹어서 떨어지고 합격한 사람들 보니 대개가 뽕작이었다.

젊은 사람은 안쳐준다. 노인인구가 많다보니 어쩔수없다.

땡 !

전국 노래자랑도 마찬가지였다. 춤이나 안추고 떨어졌으면 억울하지나 않지..나름 재밌게 하자고 준비했는데 뽕짝이 아닌게 원인이었던것 같다.

한 고등학생이 팝송부르다 첫소절도 못넘기고 바로 땡 받으셨다.

우하하 우습다 우하하하 우하하하 우습다. 뭐 이정도 나와줘야 딩동댕 하시던데...

테리우스가 에스자 코스를 먼저 탔는데 그만 탈락하고 말았고 나는 에스자에 합격했다. 낙담한 테리우스는 차에서 기다리고 나는 굴삭시험에 올랐는데 시동을 걸지 못해 탈락하고 말았다.

시험이나 제대로 보고 떨어지면 억울하지나 않겠는데 이렇게 떨어지는게 진짜 열받는다.

시험장 기계하고 현장의 기계는 다소 차이가 있을수 있고 또한 현장에서 설명을 잘 들어야 한다.

밑에서 보면 잘 보이지 않은데다가 경상도 억양이 세다 보니 잘 못 들은 듯하다.

테리우스는 한번 더 떨어지면 포기하겠다 하고 나도 다시 세번째 시험을 기다리게 되었다.

세번째 시험에서 나는 이번에는 지난번에 합격한 에스자에서 떨어지고 테리우스는 합격했다. 이번에는 다른 시험장으로 갔는데 각 시험장마다 에스자 폭이 다르다. 연습한대로 하면 떨어진다.

네번째 시험은 기차타고 혼자 보러 갔다. 다행히 굴삭기 앱이 있어 다운받아 연습했더니 에스자는 무난히 합격했다. 그런데 굴착 시험이 이상하다.

버킷을 내리는데 내려가지 않고 자꾸 버킷이 펴지는게 아닌가.

분명 기계에 문제가 있는데 헤메다가 결국 시간초과..

대개의 시험일이 공망날과 겹친다. 이거 시험치지 말라는 계시인지 공망날을 피해 시험장소를 선택하니 춘천까지 가야 되는데 할수 없다.

버스타고 춘천 절반까지 가고 있는데 유독 멀미가 올라온다. 시험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내리려다 기사분한테 물어보니 도착시간이 12시란다. 시험시작이 11시인데 뭐가 잘못된거지?

표 예매하려고 전화한 날이 공망 날이었고 그때 담당자가 잘 못 팔아서 버스를 잘못탄 것이다.

더이상은 무리다. 굴삭기는 그렇게 종료되었다. 서울이라면 지하철 타고 편하게 다니면서 더 도전 했겠지만 여기서는 무리다. 다행히 지게차는 단번에 합격을 했으니 지게차로 직장이나 알아보러 다녀야 겠다.

몇군데 면접을 오라해서 가봤는데 멀리 기차타고 가야되고 한번 갔다오면 고생이다.

웬 사기꾼들이 그리 많은지 6시까지라고 해놓고 한나절 걸려서 천안까지 가보면 12시간 일하란다. 천안옆이 병천인데 병천순대 한 그릇 먹고 돌아왔다.

쿠팡에서 연락오기를 실력 없어도 다 훈련시켜서 쓴다길래 가봤더니 시험있는데 웬만하면 다합격하니 걱정말랜다. 엄동설한에 벌벌떨며 세워놓고 두시간 동안 시험치더니 한 서너명 뽑고 다 돌려보낸다.

이럴바엔 차라리 공장에서 접시를 나르던가. 그냥 따듯한 테서 빌딩 경비를 하고 말지 합격 시켜줘도 못하겠다 싶다. 한여름에 땀뻘뻘흘리고 한겨울에 서리맞으며 일해야 하는데 월급은 최저시급이다.

지게차 타고 다니시는 분들 안색이 썩이있는 이유를 알겠다. 왜 그리 많이 모집하는지 왜그리 감언이설로 꼬드기는지도 알것 같다. 교통비만 오만원들었다 시바.

"혹시 벼룩시장 보셨어예? 벼룩시장에도 구인광고 좀 있어예."

중장비 학원에서 가끔 연락온다. 합격했는지 알아야 한단다. 잡코리아에 지게차 넣었는데 소식이 없다하니 벼룩시장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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