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촌 일기

2020 4 20 ~ 2021 4 20



벼룩 시장을 뒤져보니 영어학원 교사 자리가 몇개 눈에 띈다. 멀리갈것 없이 여기서 해결해도 될것 같다.

근처 보습학원에서 한군데 연락이 왔다. 이력서도 없이 찾아가 면접을 봤다. 써준다는 보장도 없는 이력서 지겨워서 쓰기싫다.

"이력서는 뭘.. 한번 써보시고 아니면 마는거지.."

십여년간 마사지사하고 누드모델 수백명을 모았지만 한번도 이력서 받아본적 없다.

내가 맡았던 학생들은 중학교 1학년 6명 하고 중 3반 네명이었다.

말은 드럽게 안듣고 고집 드럽게 센 놈 한두명 있는 것은 서울이나 마찬가지다.

얼핏 하도 오래되 다 쓰러져 가는 학원 같은데 여관 벽에서나 볼수 있는 창문형 에어콘을 틀면 차단기가 꺼지기 일수였다.

그래도 전반적인 수준은 꽤 높다. 이제 1학년인데 아직 말은 트지 못했지만 히어링이 꽤 되는 아이도 있다.

어려서 부터 집에서 다양한 교재를 많이 제공했던 모양이다. 발음도 상당해서 거의 원어민 가까운 애도 있다.

느그 부모님 모하시노?

이렇게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았지만 경제적으로는 풍족한 편에 속하는 듯해보인다. 도데체 사람없는 동네에 뭐가 있길래 풍족 할 수가 있지?

학원은 피아노교습을 병행하고 있고 중학교 3학년 남학생 두명은 바이올린도 배우러 온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꿈은 매우 소박하며 점촌에 딱 머물러 있다.

What do you want to be in your future?
너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똘똘이는 문경대 졸업후 요양간호사가 된다나..

80점을 간신히 넘기던게 고민이었다는 똘똘이는 내가 들어고나서 항상 딱 한문제만 틀렸는데 그 딱 한문제는 학교에서 잘못 내준 문제였다.

나는 학창시절 영어에만 두각을 나타냈으나 똘똘이는 수학도 뒤지지 않는 모양이었으니 수재였다.

야.. 너 정도면 서울대도 충분히 가.
무슨 요양원이야.

관심이 없는듯해보였다. 중학교 1학년 여학생들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수입짭잘하고 괜찮다며 딱히 다른거 해봐야 별거 없다나.

금붕어가 어항이 그세계이며 그안에서 적응하듯이 점촌사람들은 어른이고 아이고 그 안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것 같았다.

어쩌면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울사람들 다 꿈 실현하고 사나. 독일같은데 가면 아이들한테 장래희망 물으면 이발사가 꿈이라고 하는데 한국 아이들은 다 대통령이라고 한다고...

선생님 월급 언제주시나요?

일주일에 네번 하루 두시간 오십만원 준단다. 한달 오십만원 주더니 갑자기 시간제로 하겠단다. 무슨 소린가 했더니 이래저래 잘라먹고 삼십만원 주신다.

그나마 달라고 해야주지 그냥 주는 법이 없다. 가끔 마사지도 받으러 오시고 일주일에 한두번은 여기저기 맛집도 데려가시니 그걸로 퉁치자는 것 같다.

그렇게는 못한다며 잘라말하기도 그렇고 그냥 그만두겠다고 했는데 월급 올려준다는 말은 죽어도 안하시고 제발 우리하고 일년만 같이 하시자며 바지가랑이를 붙잡으신다.

서울갔다 오는데 올때까지 꼭 기다린다더니 그 사이 사람 구하셨다. 코끼리 같은 덩치에 우렁찬 목소리로 의욕은 찼는데 가르치는걸 창문너머로 들어보니 아이들 맡겨도 될지 염려스럽다.

상담사 자격증도 있으시다는 선생님은 아이들 인성교육을 무료로 해주겠다며 수업끝나고 한시간씩 교육을 해주신단다. 너희들은 이제 죽었다.

하긴 싸가지 없는 너희들은 영어보다 인성공부가 중요하지 암...

말로 안통하니 현수막 쓰다가 남은 작대기를 하나 가져다가 시시때때로 휘두르며 책상을 두들겼는데 작대기가 어느날 부채살이 되었다.

그거 현수막 바람 맞는거 버틸려면 여간 센 작대기가 아닌데 세쪼각이 났으니 대단하다 싶다.

사람은 좋아보여 인수인계를 하고 특히 조심해야 할 몇명 소개시켜 주고 시간 나면 술한잔 하자고 했더니 교회 다니신다면서 사양하셨다.

서울 온뒤 소식을 들으니 학생들은 반토막이 났고 코끼리 선생님은 기센 아이들한테 질렸는지 공황장애에 걸려 학원을 떠났는데 새선생님을 구했더니 답안지를 보고 답을 풀더라면서 답답해서 몬살겠다고 우야면 좋겠냔다.

서울 가기전 그렇지 않아도 원장 선생님이 한번 만나잔다. 그러자고 했는데 맘바꼈는지 소식이 없었다.

"내가 미안해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연락을 못했는기라.."

다시 좀 와달라고 할려다가 말았단다.

그렇게 삼십만원 짜리 월급하고 노동부 정부 보조금 30만원으로 한 6개월을 버티고 코로나는 꺾이지 않았지만 장기화 되니 사람들이 그러려니 하는 듯 조금씩 손님도 늘었다.

그 와중에 모델들도 촬영하겠다고 오고 마사지 교육생도 있었다. 일년이 되었는데 나올때 보니 딱 백만원 적자였다. 그래도 남들은 죽네 사네 하는데 이정도 적자면 나쁘지 않다고 해야 할지..

수안보에서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점촌에서는 왠지 기대하고 있던 바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돈벌이보다도 사람이었다. 왜 수안보에서는 그런 생각이 특별히 없었는지 모르겠다.

그 동네 주민들하고 친해보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 동네는 워낙 작아서 친하게 지내고 말고 할만한 사람이 아예 없었다.

그렇지만 점촌은 면이 아니라 동이니.. 여기 아무리 사람이 없다 쳐도 사겨볼 사람은 좀 있을 것이라 기대를 했다.

"크리스마스때 뭐하시오. 우리 독거노인끼리 영화나 한편 보러가지 않겠소. 범생이 노인도 온다고 했소"

범생이는 키가 185나 되는 장신이었는데 허접해 보이는 몸매는 아니었다. 이십대 후반인지 삼십대초반인지 나이차이가 좀 있다 보니 나보고 아저씨라 부르는 굴삭기 학원친구였다. 고집은 세서 형님이라고 부르라니까 곧죽어도 아저씨란다.

안소니와 알버트는 유부남이었고 테리우스는 미혼이었으며 범생이는 장가갈때가 된것 같았는데 생각이 없단다. 

"테리우스 형님이요? 저.. 저는.."

범생이는 사실 오지 않는다고 했다. 안 온다니 그냥 테리우스하고 둘이 데이트나 해야겠다.

그런데 테리우스는 범생이가 못마땅했는지 역시 못 오겠다고 하고 나는 이번 크리스마스도 그냥 집에서 막걸리에 떡복이를 볶아먹고 흘려 보냈다.

범생이는 수재였다. 똘똘이만큼이나 머리가 좋았고 시험을 보면 거의 만점을 맞았다. 복잡한 기계를 훤히 알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슨 건축학과를 나왔다는데 점촌보다 사람 없다는 상주에 살고 설비 알바를 하다가 지금은 놀고 있단다.

점촌이나 상주나 겉모습만 보면 번화했기는 마찬가지지만 그의 말에 의하면 그렇다.

똘똘이하고 같이 서울대 보내면 대성했을 아이들인데 누구는 왜 서울대가고 누구는 여기있는지 신은 참 불공평해 보인다.

범생이와는 카톡을 많이 주고 받았다. 그는 나와 많은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먼저 톡을 보내왔고 케미가 맞는 듯했다. 그렇지만 그것 뿐이었다. 술을 못한다니 만나기도 뭐하고 결국 카톡도 끊어졌다.

좁은 동네이니 결국 길에서 한번 안소니를 만났다.

"형님 제가 한번 술 받아줄게요. 한번 뵈요."

아니 누구를 영감탱이로 아나.. 술을 받아주다니..내가 아주 술 못먹어서 환장하는 노인네로 보여?

사실 안소니는 그 전부터 나와 한번 만나자고 제안해 왔었다.

"형님 우리 한번 단 둘이 만나요."
'
"그래? 좋지.. 근데.. 단둘이 만나면...무서울 것 같은데? "

농담으로 흘렸지만 안소니든 테리우스든 범생이든 점촌친구와 한명쯤은 친해지고 싶었다. 그런데 결국 모두 불발되었다.

안소니는 소시오패스 알버트와 찰떡 궁합이었고 둘이 한동네에서 오래살아 형제나 다름없단다.

그래서 결국 나를 멀리 했던 것 같다.

낮선 곳에서의 환경은 산과 들 그리고 강 그런것이라기 보다는 그 지역의 사람들과의 만남이 무엇보다도 큰 경험이 될것이고 추억이 될것이다.

그런데 굴삭기 학원 친구들도 그렇고 딱히 가까히 해주는 사람이 없다. 아무래도 내가 나이도 많고 갑작스럽게 서울 사람이 와서 친한 척 해봐야 그들에게는 낮설게만 느껴지는 것 같다.

물론 나는 그들이 없어도 당장 외로워 죽는것은 아니다. 나는 항상 손님들을 만나고 그들이 내친구이니 외로울 일이 없다. 다만 그들이 외로울까 걱정되서 하는 말이다.

"어이..허군.. 아직 서울 안갔어 ! "

부동산 사장님이 첨에는 나하고 친해 보려고 밥도 사시고 선물도 주시고 애쓰시는 듯하더니 어느날 길에서 만났는데 소리를 버럭 지르시며 왜 여태 안꺼졌냐는 식으로 인사를 건네신다.

뭐지? 혹시 내가 악담하는 소리를 들으셨나?

내집 건너편에는 이층짜리 건물에 나를 이곳에 소개시켜 주었던 부동산과 귀금속 집 그리고 옷가게 하나 사진관 하나가 입점해 있었는데 건물주가 교회를 짓겠다며 나가달라고 했단다. 그 동네는 교회도 엄청나게 많다.

그래서 부동산 사장님은 재래시장 근처 빠리바겟트 옆으로 이전하셨고 사진관 사장님은 우리 건물 일층으로 이사를 오셨다.

"거기보다는 여기 풍수가 백번 낫지 배산임수도 되고.. 요기 오고 나서 손님 늘었죠?"

"뭐.. 비슷하지.."
"코로나 터졌는데 비슷하면 잘되는거죠."
"그렇지.."
"제가 좀 풍수를 보거든요. 저기 부동산 사장님도 풍수보신다는데 왜 저기 들어가셨는지.."

배산임수도 문제고 앞 건물이 너무높아 좋지 않다.

부동산 사장님은 풍수에 남다른 자부심이 있는 듯했고 가게 문에는 풍수와 결합한 부동산 알선을 강조한 문구까지 기재한 상태였다.

"나는 풍수를 마음으로 봐..마음이 편안해지면 풍수가 좋다는 뜻이야"

마치 도인이라도 된듯 해보였고 사주나 손금에도 관심이 있어서 내가 한번 손금을 봐드린 적 도 있었다.

사주는 자기도 볼줄 안다고 하시는데 무슨 감추고 싶은 비밀이라도 있는지 공개를 꺼렸지만 신기가 있는 사주임에는 틀림없다 하였다. 신내림까지 받은건 아니시란다.

그렇게 자기 자부심이 강하신 분인데 풍수가 안좋은데 살았다는 말을 했으니 혹시라도 귀에 들어갔다면 펄쩍 뛰실일이다.

다행히 그 사진관 형님도 어찌나 말이 없으신지 그럴리는 없으리라 생각은 되지만 다른 이유는 딱히 짚히는 바가 없다.

뭐 틀린말한거 아니고 이사갔다는 집 휴지 몇통 들고 찾아가 봤더니 이번에도 배산임수 깨지고 전저고후 깨지고 안좋기는 마찬가지였다.

" 뭐 여기도 배산임수 안맞고.."

" 다 찾으면 없어.."

" 하긴 그렇죠.."

밥 사신다길래 따라가봤는데 점촌에서 제일 핫하다는 오케이 식당이었고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자리는 꽉차있었다.

8천원에 20여가지 반찬이 나오는데 남은 반찬은 어떻게 처리하는지 걱정이 앞선다. 블로그에도 맛집으로 많이 나온 집이다.

풍수를 보니 부동산 형님과 같은 라인에 있다. 라인은 같지만 같은 풍수라 볼수는 없다. 다만 이집은 대박나는 집이 맞았다.

내가 점촌 산다니까 점촌 출신이라는 한 페친이 어느 식당을 소개해주길래 몇번 갔는데 가격에 비해 푸짐하고 좋았다. 마사지 손님 한 분을 모시고 갔는데 술 한잔 하고 나오자 거스름돈이 이상하다.

술취한줄 알고 바가지 씌우시다가 딱 걸리셨다.

만원 주셔야 되는데 왜 오천원을 주세요?

"에이..뭐 돈이 중요한가"

그러시더니 먹고 떨어지라는 듯 이만원을 쥐어주신다. 만원 벌었다.

텃세는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심지어 서울에서도 동네마다 텃세가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사람없는 동네에서는 사람이 귀하니 사람을 귀히볼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으니 이곳 사람들이 더 멀어져 보인다.

왜 그런것 있지 않은가.. 여러명 모인 클럽에서는 신나게 춤추고 놀다가 일가 친척 가족끼리 모이면 입꾹닫고 초죽음 되어있는 것.

그런 심리라고나 할까.. 사람은 많고 보아야 할일이다.

'사람이 먼저다.'

서울을 떠날 때는 북적 대는 서울이 싫었다. 군중속의 고독이라고 했다. 사람많아봐야 아무런 이득되는것도 없는데 시끄럽기만 한것이 너무 싫었고 오히려 더 외로워지는것 같았다.

그렇지만 돌아올 때는 사람만큼 큰 재산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사람은 일단 많고 보아야 한다.

점촌은 아름다운 동네다. 어디하나 지저분한 구석이 없는 것은 부산이나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서울이 더 남루하다.

인프라는 인구를 넘어서 있는데 예를 들어 열집 식당이 있으면 되는 집은 세군데가 전부이다. 나머지 집은 놀고 있다. 자기집 아니면 왜 저러고 있는지 의아하다.

식당 뿐만이 아니다. 대형마트가 넘쳐난다. 세집건너 한집은 약국이고 귀금속 집이다. 가요방은 다닥다닥 붙었다.

"개가 돈을 물고 다녔다고 하죠."

나는 외지에 있다보니 사람 귀한 줄 알지만 점촌 사람들은 그 안에 있다보니 사람귀한 줄을 모른다. 낮선사람이 오면 관심을 갖지 않으며 가까이 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
하긴 그건 서울사람도 마찬가지일것이다. 외국인이 서울왔다고 해서 마구 관심가져주고 환대해주지만은 않을것이 분명한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정도면 인구소멸의 위기에 처해보인다. 아이낳으면 삼천만원까지 준단다.

왕년에 점촌은 석탄산업으로 인해 많은 광부들이 몰려들었고 돈이 넘쳐났다고 한다. 그래서 점촌은 귀금속집으로 깔렸고 쇼핑센터와 화려한 인테리어 그리고 양주집과 가요방과 대형마트가 들어섰다.

"오죽하면 개가 돈을 물고 다녔겠어요"

사람을 만나러 나는 드럼 학원에 등록했다. 드럼학원은 텅텅 비었었고 학원 선생님은 과외하러 돌아다니신다.

서울가기 며칠전 나는 학원 선생님을 근처 술집으로 초대했다. 선생님은 점촌 토박이셨다.

그는 점촌에 태어났고 점촌에서 자랐지만 사람에 대한 갈증이 전혀 없는듯 했다. 내가 제안한 술자리도 그냥 받아는 준다만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눈치다. 이차는 노래방에서 하자하니 음악가라서 노래방이 죽기보다 싫단다. 미술가인 나도 때로 미술이 싫을때가 있기는 하다.

인구소멸은 점촌만의 문제는 아니다. 만일 인구가 점점 더 줄어든다면 그때는 사람들이 화목하게 지낼까?

점촌은 이미 한계를 넘어선 동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관심갖지 않는다.

개하고 친구삼는 게 낫다 싶어 재래시장에서 돼지 껍데기를 사다가 삶아서 동네 개들을 찾아다니면서 먹이를 주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콩팥은 네게 이천원으로 한번사면 푸짐하게 먹일 수 있다. 돼지기름은 공짜로 준다. 때로는 동태사면서 머리만 한바가지를 얻어와 주기도 하고 남의집 개 먹이주기가 소일거리로 괜찮았다.

수안보에 있었을 때에 토끼 두마리를 사다 기른 적이 있었다. 두마리외에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맨날 풀만 주다가 과일 한토막을 주니 서로 먹겠다고 앙다툼을 한다.

아담과 하와가 두명의 자식들을 낳았을때 카인은 아벨을 죽였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동료를 죽이고 행복할수 있을까? 그래도 그는 외로움 보다 사람이 더 싫었던 모양이다.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한다는 말이 있으며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도 있다.

서울을 떠나고 나서 모두 맞는 말임을 알게되었다. 물 가까운 서울에는 모든 것이 있었으며 나는 파랑새가 되어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값진 경험이었다. 심심하고 외로웠던 경험. 사람이 가장 값지다는 교훈. 사람 없는 동네에서 배울수 있었던 교훈이었다.

 

 

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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