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일기

 

 

 

 

 

 

 

 

 

사실 하와이에 가지 않았던것은 좀 후회되는 일이기도 하다. 동남아 세군데 가보니 다 그나물에 그밥일것 같아서 안갔지만 여행이란 경험이며 경험한다는것은 그만큼 생각의 폭을 넓혀준다. 삶의 질을 높혀주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따라다녔던 푸켓과 보라카이 괌 ..그리고 지난 십년간 혼자 돌아다녔던 부산 충주 문경등의 경험은 모두 돈으로 바꿀수 없었던 정신적 자산이 되어주었고 하와이 하나 더 추가했으면 그역시 다시 없는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어디서 굴러먹다 온 말뼉다구 같았던 톰하고 더이상 엮이는것도 좀 위험한 일이니 그 쯤에서 그만두는 것도 나은 일이기도 했다. ​톰이 사라지고 나서 한 삼년 됐을까? 43세 때 대운에서 역마살이 들어왔다. 그때는 사주공부를 하지 않았던 때라 역마살이 들어왔는지도 몰랐다. ​동남아는 그냥 여행이고 정말 식견을 넓히기 위해서라면 유럽이나 미국은 가봐야 한다는 강박 관념은 일찌감치 있었다.

대학교 졸업후 대학원 보내준다길래 이왕 가는거 파리로 가보자 싶어 아버지한테 제의했는데 유학원에 문의한 결과 파리는 학비가 없으니 생활비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등록금으로 그곳에서 생활비를 쓰면 되니 한국에서 학교나오나 파리에서 학교나오나 똑같다는 것이다.

"아 왜요?"

​워낙 고집 세신 분이라 안된다고 단칼에 거절 당했고 그냥 해외유학의 꿈은 접었었다. 지금 같으면 그까이꺼 내가 벌어서라도 갔겠지만 그때는 정말 편의점 알바 같은 것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드러워서 내가 나중에 벌어서 간다. 하고 세월이 흘렀는데 어느덧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모아논 돈 있으니 가면 되겠다 싶었다.

마사지로 한푼 두푼 모아서 벌었는데 고작 4천만원 밖에 없었다. 내가 받은 유산은 모두 엄마가 탕진하고 없다. 사실 유산은 내가 번 것도 아니니 딱히 억울할 것도 없지만 내가 번 돈으로 유학가려니 아깝기도 했다. 집한채 가진 것도 없이 나이 사십넘어서 노후대비도 못하고 달랑 4천만원있는데 여기서 이천만원을 써야 한다.

​주저가 좀 되기는 했지만 그놈의 역마살이 뭔지 어느새 비행기 표를 끊었고 출발 날자는 다가오고 있었다.



파리만 갈까 뉴욕만 갈까 고심하다가 파리 3개월 뉴욕 3개월이 되었는데 둘다 놓치기 아까운 케이스다. 사실 뉴욕보다 파리에 살짝 더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그냥 파리에 6개월 짱박을까 생각도 했었다. 뉴욕이야 그냥 뭐.. 그동네 별 달라봐야 뭐 있겠어? 한국에도 이태원 가면 실컷 보는게 그동네 사람인데.. 마사지하면서도 많이 만났고. . 그리고 경험에 의하면 미국 백인들 그닥 볼품없다. 유럽쪽에서 온 손님들이 좀 그럴싸하다.

​뭐가 그럴싸? 하다는건지는 잠시후 밝힐 예정이고 가서보니 그것은 사실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메리칸 드림이라는것.. 누구나 한번 꿈꾸지 않겠는가? 나 미국 갔다 왔어. 하면 오...하지 나 파푸아 뉴기니에서 삼년 살았어 하면 어 그래? 뭐 그러는게 현실이니..

​가기싫어도 한번은 가봐야지 끙. ...



"왜 안되는건데요?"



아버지한테 거절 당하고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국산 대학원을 마친 후 파리에 가기 위해 나는 이를 바득 바득 갈며 오랜동안 준비를 해왔다. 우선 고등학교 프랑스어 교과서를 사서 알바하면서 한글자 한글자 익히다다 그렇게 알파벳하고 몇문장 독해 마치는데만 십년 걸렸던 것 같다. 일본어는 그런식으로 일년 걸렸는데 프랑스어는 일본어 만큼 쉽지 않고 심지어 러시아어보다도 어려운 것 같다.

​그 사이에 일본어는 어느정도 손님 받을 정도는 했는데 불어는 테이프가 있는 교재를 구하긴 했지만 발음에서 우선 막히니 진도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어기적 어기적 하면서 십년이 흘렀고 본격적으로 기본 프랑스어를 익힌것은 15만원짜리 어학 프로그램을 구입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 ​요즘 그런 프로그램이 어플로 많이 출시되어 요즘도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식이었다. 손으로 버튼 누르고 넘어가고 하면서 오답 체크하고..

​그거 씨디 몇장 마스터하고 나니 대충 불어가 뭔지 감이왔다. 그리고나서 몇년후 결국 프랑스에 가기로 마음을 먹고나자 이거가지고는 안되겠다 싶어 프랑스 학원에 등록을 했는데 그 학원의 선생님은 데미앙이란 한 30대의 잘생긴 젊은 남성이었다.

​한 175에 73정도 될까 하는 체구에 얼굴은 물론 잘생겼지만 특이한 점은 코가 어찌나 큰지 그 큰 코에 콧구멍이 동굴처럼 훤히 들여다 보이는데 왠만한 아프리카 쿤타킨테는 저리가라였다.



사실 프랑스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몰랐던 사실인데 프랑스인들은 코가 큰 편이다. 백인들이 코가 큰 것은 사실인데 그 백인중에서도 가장 코가 크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하는 말이 코가 크면 거기도 크다는 루머가 있지만 이것은 반드시 꼭 그렇지는 않지만 어느정도는 사실이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의 자지가 왕자지라는것을 뒤늦게 가보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물론 흑인들의 자지가 더 크지만 백인들 중에서는 그렇다.

​마사지는 대개 옷을 벗고 받기 때문에 아주 몰랐던 사실은 아니다. 대개 유럽에서 온 손님들의 자지가 미국인 자지보다 컸다. 그런데 프랑스 사람이 그 유럽사람중에서 가장 코가 크니 가장 자지가 크다는 것이다.

​프랑스 사람이 코와 자지가 커진 이유는 아무래도 그쪽 지역이 아프리카와 맞 닿아 있어서 흡사한 유전자를 이어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 선생님 코 이야기 하다 자지이야기 까지 나오게 됐는데 한국사람도 마사지 하다보면 프랑스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요즘은 식생활이 증진되었는지 꽤 크신 분들이 많이 오시는 편이다. 그중에 몇명 어떤 사십대 돌싱 여성분을 소개시켜 주었는데 나이가 어리다며 모두 퇴짜를 놓으셨다. 나이 어리고 코 크면 장땡인데 뭐 어쩌라는건지?

 



​저녁마다 나는 프랑스어로 일기를 써보았고 그리고 언어교환 사이트에서 프랑스인 친구를 한명 물색한후 만나서 대화도 며칠 해봤는데 큰 도움은 안됐다. 학원은 도움이 꽤 되었던 것 같고 문법이 어느정도 정리된 후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그 프랑스 친구는 흑인이었는데 프랑스에는 흑인도 많다. 그리고 미국에는 더 많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이 한국에서는 지하철 타면 아줌마들이 훅 밀치고 간다는데 프랑스에서는 그러면 살인난단다.

​가보니 무슨 말인지 알것 같다. 그냥 가볍게 옷긴만 스쳐도 빠동[익스큐즈미] 이라고 해주는것이 그나라 관습이었고 지하철 안은 사방에서 빠동 빠동하는 소리만 들린다.

​그게 좋은것 같은데 그 나라 사람은 워낙 싸가지가 없어서 조금만 스친게 큰 실례인게 된 것이다. 심지어 눈만 마주쳐도 고개를 살살 흔든다. 쳐다보지 말라는 뜻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절대로 다른 사람의 얼굴을 쳐다 보지 않는다. 고개는 빳빳이 들고 눈은 아래로 내리깔고 있는데 정면만 바라본다. 옆에서 차박으면 사고날까 우려된다.

​책받침속 소피마르소 얼굴 기억하는가?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 애가 왠지 도도해보이고 도발 적인것 같아 보이지 않는가? 그게 시크해보일려고 그런게 아니고 그쪽 애들이 원래 그렇다.

​가뜩이나 코가 큰데 코 밖에 안보인다. 콧대 높다는 뜻이 거기서 나온 것 같다. 반면에 미국인들은 상대방의 눈을 정면으로 쳐다보는것을 예의로 여기기 때문에 항상 시선을 마주치며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그래서 미국가면 우리가 한국에서 미국인 보면 동물원 원숭이 보듯 신기해서 쳐다보듯 미국인들도 한국인만큼은 아니지만 가끔 쳐다봐 줄 때가 많다.

​심지어 어떤 청년 하나가 멀찌감치서 나를 향해 뚜벅 뚜벅 걸어오더니 바로 내 앞에 딱 서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본 적이 있다. 잘생긴 거 보니 아마 게이였을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게이고 나발이고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이야기다. 절대로 절대로 그들은 남을 쳐다 보지 않으며 따라서 당신도 절대로 함부로 그들을 빤히 쳐다 보면 안된다.

​한번 도서관에 줄섰는데 내 뒤에 어떤 여자가 하도 기똥차게 이뻐서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하면서 빤히 쳐다본 적이 있었다. 한국이라면 그정도 쳐다 봤으면 무서워서라도 한번 힐끗 쳐다 봤을텐데 끝끝내 정면만 응시하다가 줄이 길었는지 그냥 돌아가 버렸다.

​미국인은 내가 보기도 전에 다가와 실실 웃으면서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같은 백인일지라도 프랑스인과 미국인은 상당한 거리감이 있다. 그래서 미국인들도 프랑스에 가면 뭔가 안 맞는 문화적 차이에 상당한 스테레스를 받는 듯 해보인다. 미국인이 강아지라면 프랑스인은 고양이라고 할까.. 뭐 하튼 많이 다르다.


 

공항에 오르자 감회가 새롭다. 톰과 몇번을 여기 왔었는데 이제 톰은 없고 혼자다. 혼자하는 여행 나쁘지 않다. 뭐든 내맘대로 할수 있으니.

누구든 이뻐 보인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중국인이든 저 여행길에 오른 많은 사람들.. 모두 형제처럼 보인다. 한 비행기를 탄 형제들.

그리고 몇시간을 자고 기내식 먹고 와인먹고 드디어 내렸는데 내려서 공항까지 한참을 걸어야 한다고 한다. "우스트르그 레어폭? 공항이 어디예요?" 정말 기네스펠트로 리즈시절 뺨치게 생긴 여성 안내원 프랑스인이 뭐라뭐라 숑숑거리는데 신기하게 들린다.

​30년 영어공부한 실력으로 파리에서 뉴욕으로 건너 갔는데 헬스클럽에서 하는 말을 못알아들어 쫒겨날뻔했다. 그녀가 한 말은 "하와유?"

​이건 문법이고 버케블러리가 문제가 아니다. 영어는 발성자체가 다른 언어다. 그런데 3개월 프랑스어 공부하고 대번에 알아들었으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우리가 불어는 울면서 들어갔다 울면서 나오니 하면서 가장 어려운 언어로 알고 있지만 사실 영어보다 쉽다. 왜냐하면 발성자체가 흡사하기 때문이다. '동끄...' 그래서...라는 말인데 말 그대로 그냥 동끄하면 된다. 영어라면 절대로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동 똥 탕 뛩.. 지멋대로 발음하면서 끄트머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영어는 상황을 먼저 이해하고 문맥으로 이해해야지 단어 하나하나를 이해하려고 하면 절대로 못알아듣는다.



공항을 향해 한 이백여미터를 걸으면서 거기 왔다리 갔다리 쏟아져 나온 전세계 국적불명의 사람들을 보니 정말 한국사람 성질 급하다는 말은 농담으로 들린다.

​뭐 전쟁이라도 난듯 빠른 걸음으로 사람들이 뛰다시피 걷고 있었고 그렇게 휙휙 지나가는 파랗고 노랗고 시커먼 사람들을 보다 보니 어느새 도

착한 공항은 인천공항보다는 좀 작으며서 어느 버스 터미널에 내린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여기서 지하철을 타야 되는데 헤멜 시간도 없이 잠시 주춤하고 있는사이 웬 핸섬한 노랑머리 프랑스인이 묻지도 않았는데 다가와 지하철 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턱주가리가 장난이 아니게 길었지만 나름 매력있었다. 어떻게 좀 꼬셔서 룸메이트로 방하나 얻어볼까 했더니 혼자 사는건 맞는데 방 빌려줄 형편은 안된단다.



프랑스의 지하철은 미술의 도시라서 그런지 남들 촌스러울까 잘 안쓰는 크레파스처럼 파란 원색을 사용한 의자들이 왠지 안촌스럽고 어울렸으며 한국처럼 옆으로 난것이 아니라 기차처럼 앞뒤로 놓여져있다.

​목적지는 파리의 끝자락에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 호스텔이었는데 서울로 말하자면 뭐..당고개역이나 오호선이라면 하남검단산 방화..그렇게 지하철역 마지막 닿는 곳쯤 되겠지만 파리는 서울의 4분의 1정도 크기라서 그렇게 외곽이라고만은 볼수 없다.

​파리의 중심은 르부르인데 지하철 타고 한 이십분이나 갈까 싶은 정도의 거리였다.



지하철에서 내려 한 십분 정도 걸어 도착한 호스텔은 집 전체를 가릴 만큼 커다란 태극기가 걸려져 있었고 벨을 눌러 안으로 들어간 후 주인장을 만났는데 자그마한 키에 긴 곱슬머리를 가진 한국인 여성이었다.

​신불자여서 이천만원을 여행자 수표로 바꾸어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사정을 이야기 하고 주인에게 그 수표를 맡겼다.

​호스텔에는 락커도 없고 모든 짐은 그냥 지급 받은 침대 옆에 놓으면 끝이다. 이층침대가 두개 들어있는 작은 방하나를 보통 네명이서 쓴다.

​그러니 분실물이 발생할까 우려되기는 하지만 어쩔수 없다. 노트북이며 휴대폰이며 다들 그냥 그렇게 놓고 쓰는데 특별히 도난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호스텔은 한국인이 운영하고 있었지만 그곳에 오는 여행객들은 거의 모두 미국 유럽 호주 등등 백인들이었고 남미 또는 중동 사람도 종종 있고 영어 잘하는 재미교포인 중국인도 두번 있었고 한국인도 가끔씩은 있었다.

​프랑스 사람도 두명 있었는데 지방에서 올라와 하숙하는 경우였다. 파리에서 학교 다닌다고 한다. 여기 호스텔이 다른데보다 최저가였고 하루 30유로인가 했었다. 한국인 돈으로 한 오만원 되니 한달 백오십만원 만만치 않은 비용이 여행비용중 호스텔 비로 지출 된 셈이다.

​뉴욕에서는 호스텔이 아니라 룸메이트를 구하는 집이 많은데 한달에 육백달러로 한 팔십만원 정도이니 훨 싸게 먹혔다.

​호스텔은 대개 식사제공이 되지 않는 곳도 많으나 여기는 아침과 저녁식사는 제공된다고 하는데 와 정말 형식적이었다. 식사제공으로 사람 끌어들이는 수준. . .

​아침은 식빵하나하고 버터 쨈 등이 제공되고 커피가 하나 나온다. 뭐 아침 먹어봐야 얼마 안먹으니 그냥 간식 수준이고 . .

​저녁 식사는 테이블에 반찬이 한 네게가 올라오는데 양배추 볶은것 당근 무친것..뭐 그렇게 채소 몇가지가 볶아서 나오고 밥이 나오는데 그 네게 반찬을 열명이서 나눠먹고 그래도 반찬이 남는다. 아껴먹으라고 무지하게 짜서 많이 먹을수가 없다.

밥은 전기밥솥에 보관하면 전기세가 많이 나오니 퍼놨다가 전자렌지에 덮혀서 나오는데 당연히 찰지지 않고 푸실푸실 하다.

고기는 당연히 없다. 당시 나는 채식중이었기 때문에 큰 불만은 없었고 일주일에 한번은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제법 푸짐하게 볶은 돼지고기와 상추쌈이 제공되었는데 거기 일주일동안 상주하는 사람 없으니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대개 여행객들은 이박삼일 길어봐야 삼박 정도고 파리를 거쳐 스페인 독일 영국 스위스 이런식으로 유럽여행을 목표로 하고 있는것 같았다.

​그렇게 많은 나라를 가 봤다는 이력을 쌓고싶은 것이다. 사실 그게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전에 보라카이 일주일 있었다가 지겨워 죽을 뻔 했다고 했었듯이 해외여행은 이박삼일이면 충분하다. 밥한끼먹고 쇼핑한번 하고 사람들 얼굴 한번 보고 지하철 한번 타고 마사지 한번 받으면 할거 다한것인데 일주일 있어봐 시간만 아깝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 삼개월 뉴욕 삼개월로 잡은 이유가 있다.



내 여행의 컨셉은 여행이라기 보다 유학이었다. 유학을 이박삼일 가는 사람 있는가? 보통 일년 이년 그렇게 하는게 유학이니 최대한 길게 잡은 것이다.

​내가 필리핀 말 배우고 싶다면 보라카이에 일주일이 아니라 일년이라도 있을수 있겠지만 필리핀말 배울 일 없으니 일주일이면 길다는 것이다.

​그런데 파리나 뉴욕은 불어와 영어를 배우는 것이 목적이기도 하니 오래 있으면 남는게 있을 것이다.

​호스텔은 따로 건물을 지은 것이 아니라 프랑스인이 거주하는 집 한채를 뭐 특별히 리모델링을 한곳도 아니고 그냥 쓰고 있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나로서는 좋을수 밖에 없는것이 그나라 평균 시민들의 환경을 몸으로 체험할수 있는 기회가 된것이다.

​그러니까 그 집은 한국으로 말하자면 그냥 단독주택하나를 생각하면 된다. 왜..동네 주택가 다니다보면 담장 너머에 감나무 있고.. 이층 양옥집에 장독대 보이고 뭐 그런 집인 셈인데 그보다 훨 수준은 높았다.

​삼층 집이었는데 일층에 방 두개 화장실 두개..이층에 방 하나 거실하나 부억하나 화장실 하나 그리고 삼층에는 조금 넓은 방 하나만 있었는데 여성 전용이어서 자주 올라가 보지는 못했다.

​앞 마당은 보통 한국인 집 마당 보다는 두 세배 큰 정도인데 시멘트 바닥이아니라 잔디밭인지 풀밭인지가 있고 프랑스풍의 멋진 파라솔이 두개 놓여져 있다. 거기에 정말 미류나무처럼 큰 나무가 두어개 있어 장관이었다.

​이층 거실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있고 거기서 친구들은 식사도 하고 노트북을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나는 노트북을 가져가지 않았는데 여행다닐때 노트북은 필수 인것 같다. 사실 요즘은 휴대폰이 발달해서 그닥 필요는 없겠지만 십년 전만 해도 휴대폰은 그냥 전화거는 거 외에 별 이용가치가 없었던 것 같다.

다행이 거기 컴퓨터 두대가 비치되어 무료 사용가능하였고 대부분의 업무를 거기서 해결했다. 테이블에는 항상 작달만한 키의 프랑스 출신 시몽이 노트북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지난번에 보라카이 여행기에서 필리핀 사람의 키가 너무 작아 깜작 놀랐다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지만 프랑스인들의 키는 살짝 작아보인다. 한국인 평균신장보다 살짝 작은 정도? 시몽의 키는 한 165정도로 그 중에서도 작은 편에 속했다.

​앙증맞고 귀여워 보이는데 턱수염은 제법 빡세게 올라오고 있었고 프랑스인들이 그렇듯 그는 절대로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노트 북에서 눈을 떼지 않고 나의 질문에 짧게 대답했다. 좀 싹수 없어보이기는 했지만 귀여워서 참았다.



일단 프랑스인들이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고 해서 꼭 그런 것만은 만은 아니다. 우리가 관심없는 사람한테는 시선을 마주치지 않지만 관심있으면 바라보게되듯 그것은 프랑스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유독 심하다는 것일 뿐이고 왠만하면 시선을 두지 않지만 정말 관심있으면 본다.

​특히나 한국인은 중국인과 구별이 안되기 때문에 프랑스인들이 한국인한테 괜한 시선을 보내는 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 베란다에 빨래 너는 것도 금지된 아름다움과 멋을 무기로 삼는 프랑스에서 중국인은 한국의 동네 중국집 보다 더 산만하게 돈만 벌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 또한 덩달아 그 부류쯤으로 생각되기 쉽기 때문이다.



시몽은 내가 그런 관심없는 부류에 속했기 때문에 눈을 마주치지 않았던 것이기도 했을 것이지만 그가 관심을 가진 사람도 있어보였다.

​데이빗이라는 한 캐나다인이 왔는데 키는 170정도로 시몽보다 살짝 크고 잘생긴 얼굴에 파랗게 면도한 멋진 구레나룻을 가지고 있었는데 시몽은 데이빗에게 급 관심을 보여왔다.

​즉 시몽은 게이였을 것이다. 아니면 언어적인 것일수도 있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게 되면 미국인에게 관심가지고 일본어를 배우면 일본인에게 관심 가질 것이며 중국어를 배우면 일본인에게는 시큰둥 하고 중국인이 갑으로 보일 것이 분명하다.

​나도 그렇지만 아무래도 언어에 관심을 크게 가질만한 나이에는 국적이 중요할수 있고 아무도 배우려 하지 않는 한국어가 모국어인 나에게 크게 관심가지는 프랑스인들은 없었다.

미국에서도 살았었다니 시몽은 영어도 유창하게 했으며 그래서 데이빗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일수도 있다.

​데이빗은 잘생기고 적당한 키에 적당한 체중이긴 했지만 관리가 좀 필요해 보이는 드럼통 몸이긴 했다. 어디가 허리고 어디가 엉덩이인지 구분이 안갔지만 그래도 아직 매력은 있어보였다.

​데이빗은 나를 보자마자 시선을 떼지 못하며 급 관심을 보여왔는데 그가 한국어를 배우지도 않는 마당에 나에게 관심을 가진 것을 보면 게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반면 데이빗은 시몽이 나에게 대하듯 시몽이 묻는 말에는 짧게 대답하며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즉 데이빗과 시몽 나 이렇게 세명은 삼각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그 밖에 나한테 관심 가지는 외국인은 한명이 더 있었고 그는 게이가 확실했다. 샘은 영국 출신이었는데 체중이 한 90키로는 되어보이는 뚱띠 금발머리 여자친구와 호스텔에 입주했다. 샘의 키는 나하고 살짝 비슷한 정도로 한 177정도에 80키정도로 역시 수염이 가득올라온 턱에 검은 머리로 잘생긴 얼굴이었다.

​한가지 흠이 있다면 여유증을 감추지 못하고 젖꼭지가 티셔츠를 뚫고 올라 오려고 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그것 말고는 몸매도 괜찮았다.

나는 그에게 좀 너스레를 떨면서 호감의 표시를 과하게 했는데 그냥 같은 호스텔에 상주하는 다국적 친구들에게 할수 있는 형제애와 같은 것에 불과했다. 보통 그런경우에 싸늘한 반응이 오기 쉬운데 샘은 왠지 모르게 살짝 떨면서 진지하게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여자친구는 단지 여자친구일 뿐 애인사이는 아니란다. 알 발음을 전혀 안하는 그의 독특한 영국식 발음은 정말 매력있었다. 영어 삼십년 하다보니 혀 꼬부리는거 짜증난다. 이박삼일이 후딱 흘렀고 어느날 호스텔 침대에 불끄고 누웠는데

샘이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샘은 내손을 잡고 한숨을 쉬었다.

​I'm leaving tomorrow. 나 내일 떠나.

​어 이거 한국에서 좀 보던 광고인데.. 저 여기서 내려요..이거 아닌가?

​대부분 이박삼일 또는 일박 이일이지만 드물게 일주일씩 묵다 가는 경우도 있기는 있었는데 한 미국인 여성도 그런 경우에 해당했다. 코에 피어싱이 인상적인 그 여성은 한 이십대 초반이나 될까 싶었고 다소 우울해보였다.

​키는 컸지만 바짝 마른 체형에 정말 왜소해서 귀여워 보이는 그런 몸매였는데 딱 뽀빠이 애인 올리브를 떠올리면 된다. 코만 우뚝 서 보였고 백인이니 중박은 가겠지만 딱히 미인형은 아니었는데 그냥 백인도 이렇게 평범할수있구나 하는것을 보는 것 같았다.

​그 코 피어싱도 옆에다 한것도 아니고 마치 소 코뚜레 처럼 바로 정면 코밑에 한것도 좀 특이했는데 말이 없고 왜소한 체격 만큼 기운도 없어보였다. 김완선씨하고 누가 힘없나 겨루면 막상막하일 것이라 본다.

​그날 저녁 와인 한잔 하며 이층 테이블에 모여 있는데 내 앞에는 올리브가 그냥 허공을 멍하니 보면서 시간 때우고 있었고 그 옆에는 검은 머리에 다갈색 피부의 인도 여성 한명이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그 때 샘이 나타나 작정한듯 갑자기 여자들의 볼에 징그러운 키스를 날렸다.

​우선 올리브한테 쭈욱..마치 침이 피자치즈처럼 딸려오기라도 할만큼 끈적한 키스였고 미국인인 올리브는 당연한 일인듯 아무런 미동도 없이 키스를 받아들였다.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것 같았다. 뭐 그럴수 있지.. 그 다음에는 인도여성이었는 데 인도여성은 마치 강간이라도 당한듯 눈을 꼭 감고 인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는 내 차례였고 이번에는 한층 더 진하고 긴 키스 를 날렸다.


"Leave him alone ~" "Leave him alone ~"

"갠 좀 놔둬.. 개한테 하지마."

​올리브가 힘없이 실눈을 뜨고 한마디도 아니고 두마디를 건넸다. 그냥 참견이었는지 아니면.. 뭐지? 혹시 올리브가 은연중에 나를 좋아했는데 질투났던건 아닌지? 남이야 키스를 하건 말건..왜?

​하긴 뭐 그때 내가 43세이긴 했지만 워낙 동안인 얼굴에다가 채식으로 63키로그램 정도의 체중에 군살은 하나도 없었고 20대처럼 보여 20대면 절반가격이라는 사우나도 민증은 보지도 않고 할인받아서 들어간 적도 있었으니 올리브가 나한테 관심이 있었을 법 하지 아니하다고 하지 않을수 없지 않지 않지 않지...않았다고 본다.

​기가민가 하다는 뜻이다.

​뭐 어쨌든 그렇게 키스는 마무리 되었고 올리브도 샘도 그 이후 볼수 없었다.

​정들만 하면 떠나니 아쉬운 것이 더 많았던 호스텔이었다.

 

★★★★★★★★★★★★★★★★★★★★★

 

호스텔에 짐을 풀고나서 우선 첫번째로 해야 할일은 휴대폰을 사는 일이었다. 그때 로밍서비스가 있었기는 했는데 로밍비용이 무척 비쌌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래서 차라리 휴대폰을 하나 사기로 하고 휴대폰 가게가 있다는 근처 대형마트를 갔는데 한국의 까르푸가 프랑스산인 것은 이름으로 예상하긴 했지만 역시 그곳에는 까르푸가 있었다.

안되는 불어와 영어 섞어서 최저가 휴대폰을 하나 사고 개통 받은 뒤 까르푸를 둘러보았는데 한국의 까르푸나 별다를 것은 없었다.

옷을 입어보면 한국에서 입는 옷들은 대개 펑퍼짐한 경우가 많은데 프랑스에서는 빡빡하게 나와서 딱 좋다. 가방을 사던 옷을 사던 뭐든 프랑스에서는 빈틈이 없다.

​과연 패션의 나라이구나 하는것을 실감하게 되는데 한국의 옷이 펑퍼짐하게 나오는 것은 누구나 사입으라고 그렇게 하는 것이지만 사실 옷을 그렇게 만드는건 옷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 본다.

머리를 깎아도 한국에서는 더벅머리로 깎아놓는데 프랑스에서는 바짝 쳐주니 입맛에 딱 맞았다.

까르푸 안에는 한국에서도 그렇듯 문구도 있고 작은 서점도 있는데 그 서점은 만화만 판매하고 있었고 비닐포장도 되어있지 않아서 쉽게 펼쳐볼수있다.

​그런데 프랑스의 만화는 남성의 성기나 여성의 유방 성행위 등이 마구 묘사되어있다. 그것도 미켈란젤로 다비드의 고추가 아니라 정말 큼지막하게도 그렸다.

​프랑스 남성 자지가 크다는 것은 전편을 통해 설명한 바 있는데 만화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만화니 더 크게 그렸고 거의 땅바닦까지 내려온 것도 본 것 같다.

​그런 만화들이 성인용이 아니라 연령제한이 없으니 놀랍지 않은가? 도데체 왜? 성행위 장면이 있다 쳐도 직접적으로 삽입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있지 않으면 성인용이 아니고 청소년도 모두 볼수 있다. 성기가 아무리 크게 그려져 있어도 발기되어있지 않으면 청소년도 모두 볼수 있다.

​믿기 어렵다면 한국의 프랑스 문화원에 한번 가보면 확인이 가능하다. 그곳에서도 프랑스의 만화들이 그렇게 진열되어있고 몇권 꺼내보면 확인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것은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되는데 어떤 남자가 와이프도 아니고 딴 여자랑 침대에서 고추 다 드러내놓고 알몸으로 뒹구는 장면도 전체 관람가이다. ​어디 뒷골목 영화가 아니다. 바로 루브르 옆인데 한국으로 말하자면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상영한다고 보면 된다.

​미국영화는 좀 다르다. 프랑스에서 수입한 미국영화가 하나 있어서 봤는데 게이영화였다. 이름은 잘 기억 안나지만 많이 알려진 유명 남자배우가 출연한 영화이다.

​돈벌기 위해 게이들한테 몸을 팔러 다닌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성기는 물론이고 엉덩이조차 나오지 않았지만 내용은 무척 자극적이고 재밌었다. 그러다가 새디스트한테 걸려서 마구 폭행당하다가 화장실로 숨는 장면이 백미였다.

​프랑스 영화는 성기가 마구 클로즈업 되는 장면들이 남발하지만 내용은 뭔 소린지 중구난방하고 하품만 나오는 경우가 많다. 보고난 사람들의 얼굴도 썩어있다. 괜히 봤다 싶은 얼굴..못볼걸 봐서가 아니라 재미없어서 괜히 본 영화다.

​재밌는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질때 사람들의 얼굴은 천국에 갔다온 듯 환하며 은은한 미소가 배어있게 마련이다.

​뭐 하튼 내용은 좀 없지만 최소한 감질 나는것은 없으니 좋다. 한국의 비디오샵에서 침 꼴깍 꼴깍 삼키면서 김밥부인 옆구리 터졌네 같은 영화 밑에 깔고 하나 구입해서 틀어보면 심지어 유두도 안나오고 상반신만 둘이서 디립다 조지는 거 보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다 보여주니 얼마나 좋은가.

​프랑스는 게이 천국이다. 영화를 보면 절반은 게이 영화다. 한국은 여성 천국이다. 영화를 보건 잡지를 보건 어디가나 여성들의 벗은 사진들을 쉽게 볼수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벗은 여성 보기가 쉽지 않다.

​서점에 가면 바로 입구에 비닐 포장도 되어있지 않은 채 따끈따끈한 새해 달력이 출시되어있는데[10월말 갔으니 나올때 됐다.] 모두 김밥만한 왕자지를 달고 있는 이십대 남성들의 적나라한 브로마이드였다. 가끔 들쳐보는 사람 있는데 누구도 관심갖지 않는다. 하도 봐서 그냥 볼게 없나 보다.

​여성 사진은 다 뒤져봐도 없다. 서점에는 그런것 뿐 아니라 작품 사진집 같은 것도 종종 찾아볼수 있는데 대놓고 게이인 사진도 많다.

​상점에서도 비디오는 쉽게 구입할 수 있는데 땡처리해서 싼 가격도 많이 있다. 하나 구입해보았는데 성인용이었다. 청소년관람가도 그런데 성인용은 오죽할까 싶어서 봤는데 볼만했다.

​일단 남성의 발기된 건 나오고 여성의 음부는 물론 항문까지 적나라하게 클로즈업 되어나온다. 그렇지만 포르노하고는 또 구분이 되는지 직접적인 삽입은 없다.그 비디오를 파리를 떠날때 호스텔 주인 아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너 17세 넘었지?"

​미국은 19세이지만 프랑스에서는 두살 더 어린 17세가 성인이다.

​"네"

​"이거 볼래?"

​사양도 안하고 누가 뺏을까 냉큼 집어갔는데 아마 그날밤 잠 자기는 글렀을 것이라 본다.

​파리의 까르푸는 한국의 까르푸와 다를 것이 없지만 몇가지 다른 점도 있다. 한국에서는 식품 코너에 가장 많은것이 아마 라면이 아닐까 싶은데 그나라는 빵의 종주국이니 식빵이 거의 한쪽 벽을 다 메우고 있다.

​한국에서는 식빵 사려면 베이커리에나 가야지 수퍼에서 식빵을 팔지 않지만 뉴욕이나 파리나 식빵이 주식이기 때문에 거의 삼분의 일은 식빵 삼분의 일은 와인이다.

​까르푸가 아니더라도 코딱지 만한 수퍼마켓을 가도 마찬가진데 단 뉴욕에는 와인이 없다. 있기야 있지만 한국에서 와인 몇병 있는 정도에 불과하고 대신 각종 쥬스가 가득차있다.

​한국에서는 계산할때 아무말없이 계산만 하고 가지만 프랑스에서는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된다. 계산하기 전에 봉쥬루[안녕하세요] 계산하고나서는 봉죠네[안녕히계세요] 라고 해 주어야 한다.

​수퍼마켓 뿐만아니라 모든 계산에 앞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표를 내주지 않는다. 이건 정말 우리도 배워야 할 것 같고 그것이 습관이 되서 한국에서도 나는 지금까지도 수퍼마켓에서 계산이 끝나면 수고하세요. 라고 반드시 인사를 해주고 간다.



프랑스의 주택가는 한국의 주택가와 다를 것은 없다. 까르푸가 있는 대로변에는 차가 다니고 대로변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오면 집들이 있는데 한국하고 좀 다른 점은 한국의 골목에는 가로수가 없지만 프랑스는 골목골목에도 가로수가 있으며 그 가로수가 미술의 나라답게 네모낳게 다듬어져 있다.

​한국에는 향나무를 네모낳게 다듬기는 하지만 가로수를 네모낳게 다듬어 놓는 경우는 없는데 거기는 그렇다.

집들은 한국의 주택가처럼 정원도 없는 빨간 벽돌집이 다닥다닥 붙은 건 아니고 왠만한 지방의 전원주택을 연상시키는 정원이 포함되어있는데 나름 디자인을 살려 독특하게 지어놓았고 앙증맞은 과실나무도 있어 몇개 따먹어보았다.

​한국에는 비둘기가 많은데 사실 그 비둘기는 88올림픽때 프랑스에서 수입해온것이다. 그 당시 한국에는 참새밖에 없었다. 에펠탑 아래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모습은 우리에게는 로망이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비둘기는 없고 까마귀만 있다.

​사실 비둘기보다 까마귀가 훨씬 귀엽다. 비둘기가 새라면 까마귀는 마치 동물 같다. 아름다운 목가적 환경에 통통 뛰어다니는 까마귀들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는데 한국의 까치를 연상하면 되겠다. 까치는 왠지 좀..너무 길고 뻣뻣해 보이는데 까마귀가 딱 좋았다.



프랑스에는 흑인도 무척 많은데 그들의 아름다움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언젠가 미녀들의 수다에서 미녀들이 하는 말이 프랑스에는 흑인이 그렇게 잘생겼다고 한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사실이다.

​백인들도 그동네는 잘생겼고 백인과 흑인 그리고 중동사람을 섞어놓은 듯한 사람들도 잘생겼고 어딜봐도 못생긴 사람이 없다.

​도서관에서 내 뒤에 줄섰는데 하도 이뻐서 계속 쳐다봤다는 그녀도 흑인+백인+중동피가 섞인것 같았는데 클레오파트라인줄 알았다.

​미국인이 그동네 가면 너무 허접해보인다. 헐리우드? 이쁜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그래. 프랑스가면 그냥 식모수준이다. 거기서 백인이 미국인인지 프랑스인인지 어떻게 아냐고?

내가 프랑스에 갔을때는 대충 헤딩한것만은 아니고 어느정도 치밀한 계획이 있었으며 그것은 교회에 다니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교회 가고 싶어서 간게 아니라 사람 만날려면 필요하다 싶었기 때문이다. 왕년에 교회 좀 다녀봤으니 맘 없다쳐도 좀 다녀주는 것 어렵지 않다.

​다국적 교회로 미국인이 세운 교회였기 때문에 미국인도 많이 오는데 예배는 영어와 프랑스어로 나누어 진행한다.

프랑스어 예배를 볼때면 영화배우같이 생긴 미국인 선교사가 옆에 바짝 붙어 앉아서 귀속에 대고 바람을 송송 불면서 영어로 일일이 통역도 해준다. 젊고 잘생긴 미국인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랑한다면서 포옹도 해주고 손도 잡아주니 교회다는 맛이 솔쏠하다.

​여성 선교사도 있었다. 전편에서 절대로 남을 쳐다 보지 않는 프랑스인과 달리 미국인은 남을 쉽게 뚫어지게 쳐다본다고 했는데 그분이 그랬다. 갑자기 어디선가 풀 발견한 얼룩말처럼 슬슬 다가오시더니 신기한거 본것 처럼 내눈을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실실 웃으신다.

​잉글릿드 버그만 하고 똑같이 생겼다. 그녀하고는 대화도 많이 나누었는데 가끔 한숨을 푹푹 쉬는게 어쩌다 선교사는 됐지만 교회에는 큰 뜻이 없어보였다. 그냥 내가 데리고 살면 되는 그런 분이었다.

영어나 불어 예배 외에도 따로 영어교육과 프랑스어 교육도 무료로 진행한다. 프랑스어 수업은 주로 중국인이 몰려와있다.

​수요일에는 25세 이하 젊은이들만 모여 다과도 하고 게임도 하는데 43세였던 내가 거기 편입되었다. 25세 이하인 줄 알았단다.

​우리가 미국 영화보면 백인들은 이뻐보이지만 흑인들은 저게 사람 얼굴이냐 싶을 정도로 못생겨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프랑스에서는 그렇지 않다.

​얼굴도 그렇지만 몸은 더 환상이다. 유모차를 끌고 가는 어떤 흑인 아줌마의 엉덩이가 나는 아직도 기억이 남는다. 엉덩이가 정말 집채 만한데 뒤룩 뒤룩 찐 것이 아니라 정말 도자기 같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프랑스에서 흑인들은 쉽게 볼수 있지만 그것은 지하철 안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수퍼마켓에서에 한한다. 식당이나 영화관 뭐 그렇게 돈쓰는 곳에서는 그들을 거의 볼수 없다.

아마 그들은 한국에 외국인 노동자가 와 있듯이 3D 업종에서 일하며 열악하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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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휴대폰도 개통했고 저녁도 먹었고 한숨 푹잔뒤 내일은 루브르 박물관을 가야겠다.

다음날 지하철을 타고 루브르를 향했다 .루브르는 서울로 말하자면 서울역 같은 곳으로 파리의 중심이라고 보면 된다.

중심이니 그닥 멀지는 않다.

프랑스의 지하철은 한국의 지하철에 비하면 많이 열악하다. 한국의 지하철이 그동안 발전한 것에 비하면 프랑스는 그동안 돈 벌어서 다 어따 썼는지 이해할수가 없다.

프랑스가 왕국도 아니요. 공산국가도 아니요. 민주주의가 분명할진대 거두어들이는 세금이 다 시민들한테 복지로 돌아간다면야 할말없지만 내가 프랑스 시민이 아니라서 자세한건 알수 없고 프랑스의 지하철및 화장실 시스템이 열악하다는것은 이미 다 알만한 사람은 안다.

우선 파리의 지하철엔 에스컬레이터가 없다. 전세계의 사람들이 몰려오는 관광 국가에 에스컬레이터가 없으니 사람들은 낑낑 거리면서 무거운 여행 가방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아주 가끔 있는 곳도 있기는 한데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두번째 프랑스의 지하철은 손잡이가 달렸다. 저절로 열리는게 아니라 손으로 잡고 수동식으로 열어야 하는 것이다. 뭐 아날로그식의 재미도 있으니 그 정도는 좋다. 오래된 역사를 느끼게 해주는 것도 좋다.

세번째 프랑스의 지하철에는 화장실이 없다. 정말 난감하지 않은가? 지하철에만 화장실이 없는 것이 아니다. 거리에도 공중 화장실이 없다.

한국 같으면 왠만한 큰 건물 들어가면 뒤끄트머리에 하나 발견하기 쉬운데 거기는 한국 같은 빌딩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파리 전체가 경복궁이라고 보면 된다. 오래된 건물인 것이다. 외출했다가도 급하면 다시 집에 돌아오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관광객들에게 아무것도 배려하지 않는 사가지 없는 프랑스인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면 보답 차원에서라도 시설을 확충해야 할 법도 한데 나몰라라다.

어느 역에 내려서 어느 건물에 화장실이 있다는 정보를 호스텔에서 알려 주고 나서야 좀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화장실이 없으니 사람들이 몰래 소변을 보는지 지하철 타러 내려가면 지린내가 코를 확 찌른다. 놀랍게도 이것은 파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뉴욕도 마찬가지다. 에스컬레이터 없고 화장실 없고 지린내 작렬하는데 뉴욕은 쥐까지 돌아다닌다. 미국은 뭐든 두배로 크니 쥐도 고양이 만하다.

파리와 뉴욕의 지하철이 여인숙이라면 한국의 지하철은 한마디로 호텔 수준이다. 곳곳에 화장실과 에스컬레이터는 물론 스크린 도어까지 달려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다.

뉴욕에서는 떨어져 죽는건 물론이고 지하철에 달라붙어 서핑하다 죽는 청년들로 인해 아예 그러한 금지광고가 3객 국어로 곳곳에 붙어있다. '지하철 문에 매달려 서핑하면 사망에 이를수 있습니다.'

그 지린내 나는 파리의 지하철 안에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젊은이들의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얼마나 벌겠다고 동전 몇푼 받으면서 귀한 세월을 축내고 있는지 안타까워보인다.

뭐 좀 있으려나 싶어 나도 한번 거리에 나서 봤었다. 초상화 한장 팔면 50유로란다. 하루 숙박료 버는것이다. 두시간 버티다가 다리가 저려서 모두 접었다.

프랑스의 지하철은 역 간격이 일분 정도로 서울보다 짧다. 그래서 파리에서는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걷다가 긿을 잃으면 그냥 가던길 가다 보면 곧 지하철역이 나온다.

루브르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 루브르를 바라보는 순간 그 동안의 우려가 모두 거품이 되어 꺼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값비싼 노후자금 축내면서 여기와서 뭐하는거지? 까르푸 갈려고 여기왔나? 걍 집에 있는게 날걸 그랬나?

앞에 광활하게 펼쳐진 루브르를 보니 비행기 값이 아깝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사방이 온통 루브르였다.

즉 말하자면 한옥집 좀 몇개 구경하러 한국왔다가 경주에 내린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외곽에 불과했고 파리는 도시 전체가 왕궁이었고 어디가나 그렇게 생겨먹었다.

정교한 건물들과 그에 맞게 여기저기 어우러진 정교한 조각상들 파리의 에펠탑이 왜 흉물이라 욕 먹었는지 알 것만 같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도데체 왜 어디서 주워 갖다 쌓아올린 고철 조가리같은 에펠탑이 파리의 상징이 되어야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프리메이슨의 상징이라는 음모론도 있다. 루브르 박물관 안의 난데없는 피라미드 조형도 마찬가지다.

루브르 박물관은 연중무휴 긴 줄이 늘어서있다. 그리고 그중 무료개방하는 날도 있다. 아마 한동안 코로나로 주춤했지만 다시 개방했으리라 본다.

루브르를 방문하고 파리의 길 찾기에 좀 익숙해질 무렵 거리를 걷고 있는데 벽 한쪽을 거의 가릴 만한 거대한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에 털이 가득한 한 벗은 남자가 손가락으로 오라고 손짓하는 그림이었는데 딱봐도 게이였다.

파리에는 간판이 없다. 식당은 물론이고 서점이며 상점이며 모두 간판이 없다. 일치감치 간판을 규제한 것은 프랑스를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보기에도 파리를 위해 무척 다행인 일이 아닐수 없다. 24시 감자탕 춘천 막국수 털보테 흑돼지 삼겹살과 같은 대형 간판 들이 즐비한 파리였다면 실망이 컸으리라 본다.

간판이 없으니 거리는 때빼고 광낸 새신랑처럼 깔끔하기만 하다. 가게 들어갈때 간판 보고 들어가는거 아니라는 걸 파리를 가보고 알았다. 사람들 밥먹고 있으면 식당인가보다. 책 있으면 서점인가보다. 옷 있으면 옷가게고 그런거다. 유리창 안에 뭐가 있는지 다 보이는데 간판이 필요하겠는가.

그런데 왜 그 거대한 벗은 남자 간판이 떡하니 거리 한복판에 자리잡았는지는 지금도 잘 이해가 안가는 일이다.

들어가보니 성인용품 파는곳이고 주로 게이용이었다. 그 곳에서 파리시내 하맘과 섹스클럽의 주소가 담긴 지도를 건네 받았다. 하맘은 사우나를 말하는데 파리의 사우나는 그냥 일반인이 출입하는 사우나가 없다. 모두 게이용이다.

섹스클럽이란 파리의 지하실을 말한다.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명칭그대로 섹스클럽이라 하며 파리에서는 모두 합법이다. 역시 게이용이다.

파리에서는 한국에서 즐비한 안마시술소나 마사지도 찾아 볼수없다. 한국에서는 세신사가 사우나에서 상시대기하며 마사지를 하지만 파리의 하맘에는 그런것도 없다.

딱 한군데 여자가 운영하는 마사지실을 입구까지 가본 적은 있는데 한 십만원 한다하여 가지 않았다.

섹스클럽은 주로 호프집 지하에 있으며 파리의 모든 호프집의 지하는 다 섹스클럽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파리의 건물은 모두 오래 전에 지어진 왕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식당이나 수퍼등 모든 가게들이 그 왕궁 일층에 자리잡고 있다.

간판규제를 하니 쓰질 못하는지 2층은 대개 주거용으로 쓰이는 것 같다. 한번 들어가 봤는데 화장실 있고 싱크대 있고 내부는 그냥 한국인 아파트나 오피스텔하고 똑같다. 그런데 밖으로 나오면 마치 한옥집 한가운데 정원이 있듯이 네모난 정원이 있고 그 정원 밖으로 나오면 초인종이 붙은 건물입구가 된다.

그런 건물 1층에 호프집이 있고 지하실이 있는데 이 지하실은 한국처럼 네모 반듯하지 않고 둥글게 파놓은 동굴이다. 적어도 지어진지 백년 넘었을 텐데 곡괭이로 파서 만든 것 같아 보인다.

섹스클럽은 헬스클럽 지하에도 있는데 그 헬스클럽에서 운동하시는 분들이 게이가 아닌지 대게 지하로 내려오지 않는다.

헬스클럽에서 운동마치고 샤워하러 내려가면 요란한 신음소리가 들리는데 성 관계 중인 남성들의 신음 소리일 수도 있고 주로 게이 포르노를 상영중인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이다.

칸막이가 되어있는 방의 벽은 동그란 구멍이 뚫어져 있는데 그 구멍으로 그 안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관람이 가능하다.

파리에 도착한지 두달이나 지나서야 나는 파리에도 프랑스 어학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 한국어 어학원이 있을리 없으니 상상을 하지 못했는데 뒤늦게 알고 서둘러 등록을 마쳤다.

어학원은 한반에 8명 정도가 들어가는 작은 반이었는데 일본인이 세명 태국인이 한명 나머지는 중국인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소규모로 배우는 반이있고 수요일은 일층 강당에 모든 반들이 모여 같이 배우는 때도 있다. 거기에는 한국인도 있었고 러시아인도 있었는데 대부분 중국인이었다.

발음은 마스터 하고 갔기 때문에 내가 제일 좋았다. 중국인들은 중국식으로 발음하고 러시아사람들은 러시아 식으로 한국인들은 한국식으로 발음하는데 나혼자 프랑스식으로 발음하니 주목을 좀 받기는 한것 같다.

프랑스 선생님 중 여자 선생님이 몇분 계셨는데 낭만의 나라이니 한 번 꽃히면 또 물불 안가리는 면도 있는것이 프랑스일 것이라 짐작이 간다.

한 여자 선생님이 수업내내 나만 바라보면서 수업을 하셨고 내가 칠판에 문제를 풀기위해 앞에 나가기라도 하면 옆에서 나를 보며 얼굴이 빨개지기 까지 하시는 등 너무 티를 내서 민망하기 까지 하다.

백인치고 뭐 그렇게 이쁜 얼굴도 아니었다.

그러던 와중 하루는 내 뒤에 인기척이 느껴져 보니 데미앙이 나를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게 아닌가? 서울에 있어야 할 쿤타킨테 콧구멍 데미앙이 바로 내 뒤에 있으니 너무 놀랍고 반갑기도 하여 나는 그의 허리를 꼭 끌어 안았는데 그 광경을 선생님이 본 후 그녀는 나에 대한 마음을 접은 듯 해보였다. 내가 게이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파리는 워낙 게이 천국이니. . .

누드크로키를 한번 해봐야겠다 싶어 한 화실을 찾았는데 나도 작은 화실을 운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정말 작아서 대여섯명 들어가면 꽉차는 화실이었고 주인은 한 50대 정도 되어보이는 여성이었다.

모델은 김밥만한 자지를 달고 있는 남성이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젖가슴이 쳐지지 않은 한 이십대의 백인 여성이었다.

내 옆에는 조금 뚱뚱해 보이는 한 여성이 서서 크로키를 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내가 그리는 그림을 보고 기가 죽어서 의욕을 상실한채 쩔쩔 매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내 그림과 그녀의 그림은 하늘과 땅차이였다.

"어 종이가 벌써 떨어졌나?"

그녀는 자발적으로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의 종이를 내주었고 부러움 반 부끄러움 반으로 우는지 웃는지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실 별로 부러울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는게 파리의 미술은 아무도 잘 그린 그림을 전시하지 않는다. 그림이라는것이 이미 파리에서는 장례식을 치룬지 오래다. 화랑을 둘러보면 그냥 그거다. 쓱쓱 문대거나..뭐 누가 설명을 해줘야만 아는 그림들. . .

그림이구나 하는 것은 루브르 박물관에서나 볼수 있으며 화랑에 가면 간딘스키가 울고가는 알수 없는 그림들이 전부를 이루고 있다.

간딘스키: 내 그림은 너무 쉬운거였네. . .

그러니 한국인이 아무리 날고 기어봐야 거기서 무슨 전시를 할수 있겠는가? 한가지 방법이 있다. 동양화를 들고가면 성공한다고 한다.

즉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어떤 미국인이 동양화 한다면서 한국에서 전시를 했다. 한국인이 반겨줄까? 지까짓게 잘 그려봐야 뭐.. 이러지.

마찬가지다. 우리가 서양화 한다면서 거기가서 깝죽대봐야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괜히 가서 망신 당하지 말라는 말이다.

한군데 화랑에서 내 누드 작품들을 인터넷으로 보여줬더니 무료 전시를 열어 주겠다고 한다. 왜? 한국인이니까 관심을 가진 것이다. 내가 백인들 누드 보여줬으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하지 못했다. 사진을 가져가지도 않았고 한국에서 보내준다고 하고 계약을 할까 싶기도 했는데 신불자인지라 포기. 작품 판매가 되면 통장으로 돈이 들어올텐데 받지 못할 것이니 할수가 없다.

혹시라도 돈 떼먹으면 파리로 날아갈수도 없고..쥔장 생긴게 꼭 도둑놈처럼 생겼다. 이제 신불을 해결했으니 열심히 벌어서 다시 가면 된다.

유화작품은 몇개 가지고 간게 있었는데 유료전시는 할수 있었다. 개인전 하기는 좀 그러니 2인 전으로 하지 않겠느냐 한다. 미술의 나라이어서 그런지 화랑 임대료는 한 백만원 정도로 한국보다 훨 싸다.

그건 문제가 아닌데 전시가 끝나면 파리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되니 그림을 놓고 가야 한다. 맡아만 준다면야 화랑이 그림이 팔릴 때까지 보관해 주는 건 나쁘지 않다.

그런데 뉴욕이 걸린다. 뉴욕에서 할까 파리에서 할까 고민하다 그냥 그림을 가지고 뉴욕으로 떴는데 뉴욕에서도 전시는 하지 못했다. 두마리 토끼 잡으려다 다 놓쳤다. 파리를 너무 몰랐기 때문에 어학원도 늦어지고 전시도 놓치고 그랬던 것이다.

파리에서는 남녀가 서로 만나면 볼에 키스를 나눈다. 이슬람 사람들은 남자와 남자끼리 포옹하고 볼에 키스를 나누면서 동성애는 사형이란다.

파리에서는 교회만 다닌 것은 아니었고 불교도 다니고 이슬람 교회도 다녀봤다.

불교사원을 찾아가니 근처에 작은 시내가 흐르고있는데 마치 몽유도원에 온듯 아름답다. 쓰레기라고는 담배꽁초 하나 볼수 없었고 어디하나 푹 썩어서 들어간데가 없는데 그렇다고 막 철망치고 가꿔놓은것도 아니다. 자연 그대로인데 이렇게 아름다울수 있는것이 신기하다.

그 몽유도원 안쪽으로 사원이 하나 있는데 한국의 불상과는 좀 달라뵈는 거대한 불상이 있고 집한채를 골라 초인종을 누르니 머리를 밖밖 깎으신 프랑스 여성 비구니 한분이 나를 맞으셨다.

스케쥴 표를 보여주시길래 시간 맞는 걸로 하나 골라서 집회에 참석해 보기로 했다.

사원 안에서 차와 빵을 먹으면서 뜨게질을 하시는 여성 한분과 안되는 불어로 담화를 나누며 두시간이나 기다린후 집회에 들어갔다.

남자는 나를 포함해서 두명 다섯명 정도 모여앉아 방석을 깔고 앉았는데 네팔 분이시라는 스님 한분이 들어오시고 찬송가를 하나 프린트해서 나눠주는데 무슨 박자도 없고 리듬도 없는 이상한 음악을 무한 반복하면서 중간중간 나팔을 불어댄다. 그걸 두시간이나 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옥을 경험했다. 비틀 거리면서 사원을 나온 후 다시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찾아간 이슬람 사원은 예배를 보지는 않았고 코란 수업이 있다길래 참석해보았다. 코란을 무료로 선물로 주었는데 거기에 책 올려놓았다가 꾸지람을 들었다. 코란위에는 아무것도 올려놓으면 안된단다. 그 코란을 지금 내가 가지고 있지 않으니 어따 팔아먹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남자 자리와 여자 자리가 나누어져 있는데 의자가 어찌나 다닥다닥 붙었는지 옆에 앉은 청년하고 몸이 딱 붙었다. 구수한 양고기 냄새가 어찌나 작렬하는지 밥안먹고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참고로 나는 양고기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양고기에 들어가는 코를 찌르는 각종 향신료도 좋아한다.

프랑스에는 이슬람인도 많지만 이슬람 음식을 파는 곳은 딱히 보지 못한 것 같다. 채식 중이었던지라 파리에서 즐겨 먹었던 음식은 바나나였는데 바나나가 한국의 바나나와는 차원이 다르게 맛이 있다. 한국의 바나나가 물탄 설탕맛이라면 프랑스의 바나나는 토종 꿀이랄까..식빵하나 사서 끼워먹으면 버터고 잼이고 필요가 없다.

레스토랑에서 파는 음식들은 8유로 정도 부터 시작하니 그리 비싼 건 아닌데 채식 중이라 사먹어보지는 않았지만 먹어볼 기회는 있었다.

공모전에 그림을 출품 했는데 출품한 사람들에게 모두 식사가 무료 제공되었고 그때 좀 먹어보았다. 놀랍게도 그 공모전의 대상은 한국인 여성이었다. 무슨 막대기 몇개 그렸는데 대상이란다. 테트리스인줄 알았다.

그 공모전은 어느 식당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으로 고작 A4용지에 색연필로만 출품이 가능하다. 웬지 허접해보였는데 그래도 주최한지는 꽤 되어 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10월달에는 모든 전시가 끝나는 시기란다. 딱 한군데 남아있는게 그거여서 출품을 해봤는데 추상이 싫어서 구상을 그렸더니 역시나 떨어졌다. 구상은 실물을 그린것을 말한다. 얼굴과 혓바닥에 가시가 마구 돋은 그림도 있었고 눈알이 하늘에 붕붕 날아다니는 그림도 있었는데 모두 떨어졌다. [이 그림들은 GODHOUSE.COM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보니 역시 구상으로 출품한 사람도 있어보였는데 역시 파리라 다르다 싶은 꽤나 실력이 대단해 보이는 것도 많았지만 구상은 모두 떨어졌다.

식당에서 전시하는거니 그냥 가게 홍보용이고 밥이나 먹고 떨어지라는 건데 열기가 뜨거워보였다. 수상한 그림들은 액자에 담아 팔릴 때까지 벽에 전시한단다.

부페식으로 제공된 음식을 접시에 담아서 조금 먹어보았는데 올리브 오일을 많이 쓰는 것 같고 생 돼지고기를 염장시켜 썰어낸 잠봉이라는 음식도 있다.

잠봉은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널리 애용되는 식품중의 하나인데 말하자면 익히지 않은 베이컨이다. 기생충이 있다하여 한국사람들은 절대로 날 돼지고기를 먹지 않지만 그동네는 인기식품이다. 보통 샐러드에 섞어 먹는데 섞어먹지 않고 그냥 먹었다가 어찌나 짠지 자연치유로 30년 만에 없앴던 치질이 그만 도지고 말았다.

다행히 이틀만에 치질은 다시 사라졌는데 함부로 먹었다가 경치기 딱 좋은게 그거니 주의필요.

파리의 가게는 레스토랑이 주를 이루지만 샌드위치 가게도 쉽게 찾아볼수 있다. 긴 바겟트를 바로 구워 그 안에 야채와 고기를 넣은뒤 반 뚝 잘라서 주는데 서브웨이를 연상하면 딱 맞기는 하지만 엄청 맛있었던것 같다.

파리에는 괴도루팡을 능가하는 신출귀몰한 소매치기가 득실댄다. 가방은 반드시 앞으로 부여잡고 다녀야 하며 현금은 절대로 들고 다니지 말라.

호스텔은 한국인이 운영한지라 나와 주인장은 궁합이 잘 맞는듯했다. 나는 새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주고 아이스브레이커 역할을 많이 한데다가 가끔 호스텔을 못찾는 여행객들을 픽업해오기도 해주니 주인장은 내가 맘에 들었나보다.
나를 직원으로 채용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정말 솔깃한 제안이기는 했다. 해외에서 직장 구하기 쉬운게 아닌데 눌러 앉을 절호의 기회가 되지 않겠는가.

일주일 일해보니 뭐 예약사이트 접속을 안했느니 문을 늦게 열었느니 잔소리를 해대시길래 때려치웠다. 원래 팔자에 직장운이 없다.

그 호스텔에 뼈를 묻을 것만 같았던 시몽은 어느날 호스텔을 옮기겠다며 집을 나섰다. 나는 그의 짐을 들어다 주고 지하철 역까지 바래다 주고 프랑스식 인사를 나누었다. 원래 남자끼리는 키스를 안하지만 오래못보거나 하는 경우는 한단다.

그래서 그의 양쪽 뺨에 정성껏 두방의 키스를 했는데 늘 싸늘했던 시몽은 드디어 마음의 문을 연듯해보였다.

키스를 받는 그의 표정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유종의 미를 장식하고 추억을 갈무리 하고 있는데 시몽이 뜨악하고 나타난 것이 아닌가.

왜 안갔냐니까 저녁때 가는 거고 짐 날르러 갔던거란다. 시몽은 키스의 약발이 제데로 먹혔는지 도도한 프랑스식 시선이 완전히 사라지고 내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것도 실실 웃으면서 무장해제가 되어있었다.

포옹과 키스의 힘은 위대한 것 같다. 그리고 그날 저녁 다시 그를 배웅해주면서 다시 키스를 건네주었다. 한번 했을 때 좋았는데 또 할려니까 쑥스럽다.

그렇게 시몽은 사라졌고 지금쯤 어디서 뭐 먹고 사는지 가끔 궁굼해진다.

담편에는 뉴욕 여행기가 이어집니다.

감사합니다.

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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