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지 소설

이소설은 지난 이십여년간 마사지 업계의 일을 해오면서 겪었던 실화소설입니다. 간단히 추린 내용은 소개 페이지에 있습니다.

 

이 소설은 개명전 소설입니다. 현재는 허일[許日]로 개명하였으며 허일은 원래 이름이었으나 사연이 있어 5살쯤 허진으로 개명하였고 최근 2022년에 다시 원래 이름 허일로 개명하였습니다.

 

 

 

누를 진(鎭)

 

"이런 이름이 누를 진이니 맨날 누르는거나 하고.."

"푸하하.. "

지우개로 칠판을 누르면서 푸념했더니 동영상 촬영을 하고 있던 총무님이 웃어주었다.

"마사지도 누르는 거잖아요."

"그러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그말 할려고 했었는데 잘 짚어주었다. 그 전날 한자 수업이 있었다. 한자를 공부하면서 매우 신기한 이야기들을 배우면서 나는 한가지 깨닫는 것이 있었다.

"선생님 지난주에 선생님 말씀듣고  곰곰히 생각해봤는데요. 제 이름이 허진이잖아요. 허락할 허에 누를 진."

강의 끝날때마다 칠판 지우는 걸 담당하고 있는 나는 그날도 잔뜩 휘갈겨 놓은 분필들을 지운후 내이름을 칠판에 적었다.

"그러면 남이 누르는 걸 허락한다는 거네.."

"맞네요. 남이 누른다는 거잖아요. "

총무님이 끼어들었다.

"아니죠. 너는 누르고 살아라..하는 신의 계시죠. "

좀 건방지게 들렸을지 모르지만 수긍했는지 말이없었다. 내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갑자기 내가 살아온 지금까지의 여정을 모두 글로 써서 보내보라고 하신다. 갑자기 내가 궁금해졌던 모양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것이 마사지를 의미하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이름으로 인해 어떤 권력의 상층에 오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예감으로 한말이었다. 권력이란  누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권력에 그닥 관심은 없다. 정치나 뉴스에도 좀 둔한 편이다.

그런데 집에와서 또 곰곰히 생각해보니 마사지가 누르는거 아닌가. 십연녀간 누르는 일을 해왔던 것이 누를 진 자 이름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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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년 전

처음에 마사지를 배우기 시작했던 그때로 돌아가본다. 설마 내가 마사지를 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어떡하다가 내가 여기까지 오게되었는지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은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한번도 마사지에 관심 가져본 적은 없었고 해볼 기회도 없었다. 나는 미술 전공이었고 내가 했던 것은 붓질이었으니 이것도 엄밀히 말하자면 누르는 일이다.

만일 디자인 전공을 선택했으면 붓질은 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순수미술을 선택하는 바람에 늘 붓질만 하고 청년기를 보냈던 것 같다.

어쩌다 순수미술을 선택했는지..도데체 밥벌어먹지 못할 것 같은 이 한심한  전공을 겁대가리없이 선택했었는지 지금생각해도 후회 막심하다.

"순수미술하면 돈벌기 힘들어 디자인 전공을 해 그게 낫다니까. "

원장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순수미술을 선택했고 후회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영어교사

 

"허진씨가 누구예요?"

"아.. 전데요"

"공부 어디서 했어요? 놀라운 실력이 나왔네요?"

"아 뭐..그정도야 뭐.. 그냥 혼자 ..틈틈히..ㅎㅎ"

군대 제대하고 나니 딱히 할 만한 일거리가 없었다. 영어는 잘했기 때문에 영어와 관련된 직장을 구하고 싶었다 대학원 진학때에 미술학과는 일반학과에 포함되어있어 영문과 학생과 같이 시험을 쳤다.

그런데 영어성적이 내가 제일 높았던 모양이다. 조교가  내 시험지를 들고 나와 눈이 휘둥그래 졌다. 영문 번역이었는데 어찌나 길고 어렵게 나왔는지 꽉 채운 내 페이지지와는 달리 아마 다른 애들은 반도 못채웠으리라 본다.   그렇지만 전공이 영어가 아닌이상 영어와 관련된 직장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마침 그때는 초등학생 영어 가르치는 직장이 범람했었다. 눈높이를 필두로 윤선생 튼튼영어 빨간펜 푸른영어 등등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왔고 영어전공이 아니더라도 대졸자는 모두 채용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윤선생 및 다른 회사는 무척 고달픈 편에 속하는 듯 했다. 나는 그때 기독교 방송국에서 만든 영어교육에 취업했는데 대개 기독교 신자이니 선생님을 잘 믿고 따라주었으며 그럭저럭 할만했고 밥벌이는 했다.

 

신설동 화실

2년 정도 일했는데 평생 할 만한 직장은 아니었다. 코흘리개들이 귀엽기는 했지만 언제까지 하아유 아임파인 탱큐나 가르치면서 젊은 시절을 보내야겠는가.  그만 둔 후에 화실을 하나 차렸다.

보증금 삼백에 월세 오십만원으로 신설동에 10평짜리 사무실이었다. 그럭저럭 월세는 뽑았다. 미대 입시미술 수강료는 대개 오십만원이었으나 나는 삼십만원을 받았고 그렇게 두세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근처의 무역회사에 영어 번역으로 운좋게 취업하여 월 이백만원을 받았다. 회화과 전공이라고 하니 영어회화 전공인줄 알았다는 후문...  무역회사는 7시에 퇴근하고 화실은 저녁 7시에 문을 여니 딱맞았다.

3개월쯤 운영하던 때 갑자기 아이엠 에프가 터졌다. 나오던 학생들도 중단하였고 일년만에 화실은 문을 닫았다.다니던 회사는 부도났다.  사장은 도망갔고 빚쟁이들이 몰려왔다.

 지금 생각하면 시기가 시기인 만큼 그냥 가만있어도 될 만한 상항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자금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유산은 많았지만 아버지의 허락없이 내가 쓸수 있을 만한 돈은 아니었다.

겨우 삼천만원짜리  집을 하나 팔아 엄마와 남동생과 반 강제적으로 붐빠이 해서 천만원을 건졌다.

엄염히 내 유산이었고 그들도 똑같이 받았는데  왜 자기 재산 다 팔아먹고  남의 재산을 뜯어먹는지 이해가 안갔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컴퓨터 그래픽

그렇게 만든 천만원으로  막 유행하기 시작한 컴퓨터 그래픽에 도전하고자 학원에 일년 등록을 했다. 미친짓거리였다.

 쥬라기 공룡이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는데 그 공룡들을 모두 컴퓨터로 만들었다고 하니 구미가 당기지 않을수 없었다.

99.9% 취업이라는 요란한 광고와는 달리 분위기는 어두웠다. 모두들 취업을 못해서 긴장하고 있는 듯 했다. 그때 이미 나는 30세였고 취업을 하기에는 늦은 나이었다.

지금 사십구세의 나이로 그때를 생각하면 많이 젊었던 나이다.그렇지만 그때는 내가 그렇게 늙어보일수가 없었다.
 

나보다 어린애들도 취업을 못하고 있는데 내가 될리 만무했다. 비싼  학원비만 날리고 일년이 흘렀다. 

끝나갈 때 즘 누군가 직원을 구하고자 학원으로 상담해왔다. 게임 개발 업체인데  월급 오십만원 밖에 주지 않는단다. 밤샘 작업도 있단다. 아무리 아이엠 에프라지만 결국 아무도 가겠다는 사람이 없어 그냥 돌아갔다. 나한테는 묻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하고 싶었다. 그냥 노느니 오십만원이라도 받으면 되는거 아닌가?

왜 묻지도 않는지..내가 나이먹어봐야 한 두어살 더 많은 것이고..잘하는지 못하는지는 시켜봐야 하는 것 아닌가? 박봉이라매..내가 딱이구만..  생각해보면..인연은 아니었다. 컴퓨터 그래픽 해봐야...말만 그럴싸하지..노가다라는 것이고 공룡은커녕 개구리 한 마리 만드는데 한달 내내 걸리는 것인데 미래가 있겠는가?

하루죙일 앉아서 꼼지락 꼼지락 하면서  tv 화장품 선전에나오는 움직이는 개구리 한 마리 그려봐야 무슨 보람이 있겠는가.실제로 컴퓨터 그래픽 직종은 미국에서도 하향직종이 되었다고 한다.

내가 할 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회가 다가와 주지 않았던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만일 내가 그때 용기를 내어 저..제가 해보면 안될까요? 하고 지원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취업이 되었을테고..그리고 마사지의 기회는 영영사라졌으며 그래도 젊은 시절을 어두컴컴한 사무실 컴퓨터 앞에 칙칙하게 앉아 귀중한 세월을 그냥 흘려 보냈을 것이다.

오십만원에 실컷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본전도 못건지도 피폐해져서 나왔을 것이다. 후에 내가 마사지로 한달에 이삼백만원 벌수 있을 것이라는걸 알았다면 들어갈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달이었던 것 같다. 취업은 마음속으로 이미 포기했다.

우먼센스인지 여성중앙인지.. 근처의 한 은행에서 잡지책을 읽다가 조그맣게 한 귀퉁이에 난 마사지 교육생 모집 글을 보았다.

 

15년전

우연은 없다고 본다. 마사지를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 글을 읽게 된 것이다. 언제나 늦은 취업으로 나이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있던터라 마사지야 말로 나이상관없이 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던 것이다.

마사지 교육업체는 신촌에 위치해 있었으며 국내 최초의 교육업체라 하였다.

고려대와 연세대등의 체육전공 학생들이 단체로 스포츠 마사지를 배우러 오기도 하였다.

나는 대여섯명의 동기생들과 한달 반의 수업을 들었는데 매일이었었는지 주삼회정도였는지 잘 기억은 안난다. 어쨌든 하루도 빠짐없이 들었고 열심히 한다 칭찬 받았다.

내가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다니고 있었던 컴퓨터 그래픽 학원은 강남에 있었던 이포라는 학원이었다. 지금은 사라져 찾을수 없는 듯하다. 망한건지 이름을 바꾼건지 ..

한달에 사십만원인가를 일년치 일시불로 지불했다.  그런데 취업이 문제가 아니었다. 학생들을 그냥 컴퓨터 앞에 앉혀놓고 아무것도 가르치질 않는 것이었다.

뭐 이런 학원이 다 있나 싶었다. 그냥 너희들끼리 연구하고 선배가 후배가르치고 그렇게 해서 배워라 하는 듯했다. 식은 땀이 흘렀지만 어쩔수 없었다. 선생이란 자는 그냥 자리만 지키고 있는 것이 전부였고 뭐좀 물어보면 짜증만 냈다.

 

할 수 없이 영어로 된 원서를 뒤져서 혼자 공부를 했다. 이상한 것이 백과사전같이 두꺼운 책속에 쓸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또 비디오 교재를 판다길래 사서 보기도 했는데 그것도 자체 제작한 것이 아니고 어디서 인터넷으로 구매한 것을 복사한 모양이다. 좀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그닥 충분치 못한 듯 했다.

거금 주고도 가르쳐주지 않는 이상한 학원에 일년간 다니고 난후니 마사지 한달 반 배우는 것은 무척 신나는 일이었다. 어쨌든 매일 가르쳐주지 않는가. 가르쳐 주는데 왜 배우지 않겠는가. 돈주고 배우러 왔지 않았는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들었으나 모두 나같지는 않은 듯 했다. 대개 한 80% 출석률을 보였고 중도에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한달 반의 교육이 끝났지만 취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날 보고 안타깝다고 실장이 이야기 한다.

아주기를 바랬던건 아닌데 들었던 모양이다.  열심히 하시는 것 같은데 주로 여성들이 취업률이 높다고 하며 아쉬워 했다.

그러나 나는 별로 실망하지도 않고 아쉽지도 않았다. 예상했던 일이다. 그렇게 쉽게 취업이 가능한 것이라면 벌써 길이 열렸었겠지 .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 들었었겠지.  

검색등록

뭔가 인터넷을 통해서 일을 만들어 볼 수 있을 듯 했다.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어보기로 했다. 서점에서 책을 구입한 후 하나하나 따라하기를 하다가 웹 에디터를 알게 되고 웹에디터를 구입하니 전화로 모르는 부분은 상담해주었다.

그때 내가 만들었던 홈페이지는 달랑 다섯 페이지에 불과했다. 글씨는 몇자 들어가지도 않았다.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nter   첫페이지

마사지 요금 땡땡땡  두 번째 페이지

전화번호 땡땡땡땡땡..  세 번째 페이지.

서울 전지역 출장가능합니다. 네 번째 페이지

그게 다였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이쁜 사진만 큼직하게 몇장 집어넣었다.

야후에 등록신청을 하고 고작 이틀 지났는데 소식이 없어 나는 야후에 전화를 걸었다.

"저 그저께 등록신청을 했는데 아직 안올라 와서요. "

"아네..확인 되었구요.  올려드리겠습니다. "

그리고 그날인가 다음날 내 홈페이지는 당당히 검색에 등록되었다.  마사지 검색해보면  고작 여덟게 나오는 홈페이지중 하나였다.
 

그 여덟개는 한개 빼고 모두 교육업체였으며 여덟개 중 서너개는 같은 회사였다. 실제 마사지를 하는 사이트는 나하고 부산지역의 한 업소가 전부였다.

   

 잡아먹으라

그리고 출장을 나가기  시작할 때에 즘.. 나는 꿈을 하나 꾸었다. 시커멓고 윤이 빤짝 빤짝 나는 개 한 마리를 본 것이다. 그 개는 혈기 왕성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신의 음성이 들렸다.  " 잡아먹으라"

나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출장 마사지를 시작하면서 꾼 꿈이니 이에 대한 계시처럼 느껴졌다. 출장마사지를 하지 말라는 뜻일까?

사실 초창기였던 만큼 마사지에 대한 시선이 그닥 곱지 많은 않은 것이 사실일 것이고  이를 시작하기로 생각했지만  마음속으로 확신을 갖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주저하는 마음도 살짝 들었다.

잡아먹으라는 말은..계시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교회에 미쳐 사시는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 계시록에 베드로가 꿈을 꾸었었잖아. 어떤 징그럽게 생긴 짐승이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잡아먹으라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고 했지.그때 베드로가 뭐라고 했었지?"

"거부했었지..부정한 것을 먹지 않도록 가르침 받았나이다. 이렇게 이야기 했었지. "

"그래서 하나님이 뭐라고 했었지? "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부정하다 하지 말라 고 했지."

 

만일 베드로가 그 부정한 것을 거부하고 결국 먹지 않았다면 내꿈은 결국 부정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엄마말에 의하면 하나님이 허락했다는 뜻이니 부정한 것이 아니며 해도 된다는 뜻이다. 성경을 뒤져본후 꿈이 긍정적인 꿈이었던 것으로 해석되었다

나는 기독교 신자는 아니다. 그러나 어렸을 때 카톨릭에 깊이 심취해 있었다. 카톨릭도 중단하였다. 그러나 너무 어릴때부터 골수에 묻혀있던 종교라서 종교를 떠난 후에도 영향이 없을수가 없었다.

어떠한 사건이나 의미를 성경적으로 풀어보는 습관이 지속되었던 것이다.

그건...초등학교때의 담임선생님말씀이 자꾸 머리에 떠오르거나 한번 외웠던 국민교육헌장이 영영 잊혀지지 않는것과도 같다.

종교를 떠났더라도 잠재의식속에 남아있는 내용들이 계시가 되어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개꿈덕분인지 나는 힘을 얻어 주저없이 출장을 다녔다. 늦지 않기위해 헐레벌떡  이리뛰어다니고 저리 뛰어다는 경우가 잦았다. 오분이라도 늦는 것은 큰 실례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방송국에서 일할 때도 골목골목 돌아 다니는 일이었다. 그때도 엄청 뛰어다녔었지.

 

사주에 역마살은 없다. 그런데 왜 그렇게 뛰어 다녀야 했는지 알수 없다. 왜였을까...신축 대운..그리고 경자대운..이십년간을 나는 무던히도 뛰어다녔다.

 

여러 가지 홈페이지들

그리고 점점 홈페이지 만드는 방법에 익숙해지면서 페이지는 점점 늘어나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때 만들었던 홈페이지는 마사지 홈페이지 이외에도 여러개가 있었는데 좀 닭살 돋기에 폐지한 미남클럽(하루 4백여명 방문)이라는 홈페이지가 있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가지고 있는 아저씨 닷컴 ajusi.com  보디빌딩을 소리나는대로 변형하여 도메인을 만든 보디빌딩 닷컴 bodibilding.com  그리고 지금은 남의 손에 넘어간 미술과 판매 artnsale.com (미술전문 누드모델 모집. 하루 8백여명 방문) 이라는 사이트가 있었다. (현재는 갓하우스닷컴 godhouse.com으로 이전)

그 당시에는 인터넷이 바다라고는 했지만 교육업체 포함한 마사지 사이트가 고작 여덟 개에 불과할 정도니 지금보다는 많이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만든 홈페이지들은 조용한 반응을 일으켰다. 예를 들어 나는 백일섭씨 팬 홈페이지도 가지고 있었는데 이 홈페이지는 박미선이 진행하는 한 토크쇼에서 백일섭씨를 모시고 직접 소개되기도 하였다.

장동건 정우성 신화 등의 팬클럽 홈페이지는 쉽게 볼수 있어도 중견탈랜트 팬 홈페이지는 지금도 그렇지만 전무했었다고 보면 된다. 마사지도 그런셈이지만 나는 틈새를 찾는데 강했던 것 같다.

 

원조

미남클럽이 나오고 한 일년쯤 지났을 때였을까? 갑자기 꽃미남이라는 신조어가 나오며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이어 얼짱닷컴이 나와 유명해졌다. 원래 원조는 조용한 법이다. 남대문 시장 갈치골목에 가면 모두가 원조 갈치집이고 진짜 원조는 찾을수 없다.

뒤늦게 나왔다고 해서 반드시 벤치마킹이나 혹은 표절이라고는 볼수 없고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사실 내가 미남클럽을 만들었던 이유는 내가 미남이라거나 내가 미남모아서 뭘 어째 보겠다는 것이 아니었고 단지 키워드 선점을 위한 것이었다.  인터넷이 막 범람하기 시작할 때즘.. 검색을 통해 가장 두드러질수 있을 만한 키워드를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미쳤고 미남클럽은 사람들이 검색해 볼 만한 키워드였던 것이다.

아저씨 닷컴도 그건 마찬가지다. 미술전문 누드모델을 모집했던 미술과 판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가 선점한 키워드들로 인해 내 사이트들이 폭풍같은 관심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별로 그런 것은 없었고..말 그대로 조용한 반응이었다.

지나고 보면 어딘가모르게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던 것 같지만 두드러지게 알려지지 않고 흘렀다는 것이다.

그당시 폭소클럽이라는 개그방송이 하나 나왔었는데 이 폭소클럽또한 미남클럽의 벤치마킹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폭소클럽은 성인취향이면서 일인 개그형식의 스탠딩 개그가 주를 이루었는데 예를 들어 서남용의 사물 개그나 '사장님 나빠요'로 힛트친 정철규씨의 블랑카 개그등이 있었다.

김제동씨나 유민상씨(마른 인간연구)등을 배출했던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미남클럽은 다소 성인층을 위주로 하면서 스탠딩개그와 같은 형식의 글들을 많이 방출한바 있었다.  제목도 비슷하니 그럴수 있겠다 싶었다.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사람이 없으니 주로 내가 아이디를 바꾸어 여러사람이 글을 쓴것 처럼 글을 올렸었는데 다소 코믹하면서  성인용 글을 주로 올렸던 것이다.

 

웹툰의 경우도 제일먼저 시작한 것은 아저씨 닷컴을 통해서였다. 여기에 그린 만화들이 어느덧 개그콘서트에서 코너화 되어있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예를들어 '까다로운 변선생'이라는 코너에서 나오는 변기수씨가 착용하고 나오는 하늘을 찌르는 머플러는 내가 그렸던 만화속에서 등장했던 여자 선생님의 모습이었다. 내용은 중학교때에 어느 여자선생님이 치마속 거울 테러를 당해 학교를 떠났다가 돌아온다는 내용이었다. (원작은 분실함)

 

그리고 대여섯 개의 소설을 썼었는데 그소설들은 지금 만화화 하여 godhosue.com에 모아놓았다가 현재는  sns로 이전중이다.

전세계의 고객들

내 마사지 홈페이지는 구굴에서도 상위검색되었는데 그로 인해서 전세계의 고객이 있었다. 미국 캐나다 호주 그리고  유럽각지의 고객들과 일본손님도 꽤 많이 있었고 중동 지역 홍콩 동남아 지역도 가끔 있었으며 심지어 한번은 마다카스카르에서 온 고객도 있었다.

출장은 주로 호텔들이었는데 힐튼 하얏트 인터콘티넨탈 웨스틴조선 워커힐 롯데 이비스 프레이저 스위트 신라 임페리얼 펠리스 JW 메리엇 프레지던트 앰배서더 등등 서울시내에 가보지 않은 호텔이 없었다.

 

 

어느 후원자

출장을 다니던중  어느 아파트에 갔을 때였다 내또래의 한 친구가 혼자 35평이나 되는 넓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일주일에 한번 주기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마사지를 마치고 차한잔 마실때 나는 그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모두가 출장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서 받을수 있는 곳은 없느냐는 문의가 종종 있었다.

나는 유산을 많이 받았었지만 대개 부동산으로 내가 당장 쓸수 있는 형태는 아니었다. 아버지의 허락이 없이는 팔수도 없었다.  즉 나는 하우스 푸어에 해당했고 무일푼으로 돈을 벌어야 했다. 결국 그 부동산도 모두 엄마와 가족들의 계략으로 날아가게 되었으니 결국 나를 지금까지 먹여 살린 것은 아무런 자본없이 출장으로 시작한 마사지가 전부였다고 해도 과연이 아닐것이라 본다. 

그 친구의 집은 서울의 중심부에 있으니 여기를 본거지로 자리를 만들어 보는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친구는 흔쾌히 허락했고  그 이후로 나는 그 친구네 집에 묶게 되었다

아파트에서 마사지 손님을 받은 것이다. 특별하게 꾸며놓은것도 없고 그냥 바닥에다 이불 하나 깔고 하는 것이 전부였다. 뭐 딱히 마사지라는 것이 출장도 그렇고 바닥에 이불하나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매일 저녁 손님이 왔고 친구에게 마사지를 가르쳐주고 친구도 일을 주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자기가 벌은 돈을 그냥 나에게 돌려주기 일수였다.

돈 많이 버는 친구였다. 취미삼아서 마사지를 배웠으니 그냥 주겠다는 것이다. 마사지를 시작하고 나서 부터는 일이 술술 풀렸던 것 같다. 경자 대운이었다. 대운이 좋았었는지..

그렇게 해서 친구도 출장 다니고..집에서 손님도 받고 하다가 친구는 포기했다.

친구가 다니는 회사는 새벽 5시에  넥타이 메고 빳빳하게 다린 양복입고  출근한다. 어떤 회사인지는 모르지만 토요일도 일요일도 쉬지 않는다. 한달에 두 번 쉰다.  저녁에 7시쯤 퇴근하는데 집에 오면 녹초가 된다. 마사지를 받아도 시원찮은데 마사지를 하기가 힘들 다는 것이다.

 

돌아왔구나

한 삼개월 있었을까? 친구가  혼자살던 곳은 곧 팔아서 가족들하고 합쳐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할 상황에 처했다. 결국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기도했더니 돌아왔구나. "

"뭐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의 뜻이라면 돌아오게 해주시옵소서..하고 기도했지. "

"아니..왜 그런기도를 해 ?"

"아니 내가 무조건 오라고 했어? 하나님의 뜻이라면 돌아오라고 했지. "

"하나님의 뜻이건 아니건 그런 기도를 하지를 마..왜 돌아오라 그래 잘있는 사람을..엄마땜에 돌아왔잖아. 하나님의 뜻이라면 잘있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했어야지. "

진짜 엄마땜에 결국 돌아오게 되었다 싶었다.왜 그런기도를 한단 말인가. 나는 기도의 힘을 믿는다. 기도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쓸데없는 기도 때문에 일을 그르친거 생각하니 부아가 끓었다. 앞으로도 시시때때로 이상한 기도할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대책이 없는 인간이다. 이건 마녀가 아닌가 싶다.

교회에 미쳐다니던 엄마는 결국 집근처에 작은  사무실을 하나 얻어 월세 60만원에 교회를 하나 차리고 스스로 목사가 되었다.

나는 이후 서울 중심부에서 좀 멀기는 하지만 상계동 아파트에 마사지실을 차리기로 결심했다.

 

상계동 마사지실

청개천에 있는 아파트를 사천만원에 팔았다. 지금은 이억이 넘어가는 아파트였지만 그때는 청개천 개발 이전이라 그것밖에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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