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기
2016 08 16 ~09 14


이 소설은 부산에서 한달간 마사지실을 오픈하였을 때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드디어 부산행.

부산을 꿈꿔본지 벌써 수년 전이었다. 굳이 서울에서 살아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서울에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서울에 부모님 모시고 살거나 뭐 가족이 서울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거나 그런것도 아니니..

그래 부산에서 살아보자..그런 생각이었다. 새로운 기회 새로운 경험 그것이 새로운 인생아닌가?

그런데 결국 멀리 가지 못하고 찔끔 떠나온 곳이 이곳 충주 수안보온천. 나중에 다시 돌아오게 될줄은 몰랐지만 사실 원래 가고 싶었던곳은 부산이었고 결국 부산행 기차에 오르게 되었다. 

사실..충청도는 우리 외가쪽이기도 하고..뭐랄까.. 서울말과 억양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인지 '다른곳'에대한 환상을 크게 충족 시키지 못하는 듯하다.




떠나기전 점찍어둔 곳은 부산 국제업무지구인데 아직 안가봐서 어떤곳인지는 잘 모른다. 그냥 네이버 부동산으로 여기저기 고르다가 정했다.

1


장기간 여행을 떠날때를 대비해 아침 일찍 산책길에 올랐다.오랬동안 기차에 앉아있으려면 미리 지칠만큼 걸어주어야 한다. 긴 여행이 지루하지 않고 푹쉬는 시간이 되어 줄것이기 때문이다.


한동안 안가던 길로 산책길을 올랐다. 조금 더 가다보니 못보던 길도 발견했다. 마을하나가 보인다. 마을쪽으로 올라가다 보니 한 영감님 한분이 개 한마리를 데리고 산책중인것이 보였다.좀더 다가가니 아는 사람이었다.


"어..여기 사셨어요?"


"응.. 어쩐일이야..산책나왔구나?"


"네.. 이쪽은 처음 와보네요."

나이에 비해 정정한 몸집을 가지고 있었고 마사지실에 몇번 왔었던 단골이시다.

"저 담주에 마사지실 문 닫아요."

"차나 한잔 하고 가지.."


영감님은 개의 목줄을 잡아끌었다. 개는 가지 않으려고 거세게 버텼지만 이내 포기했다. 집에 가기 싫은가보다.. 영감님의 집은 지은지 얼마 되지 않아보였다. 마당에는 곱게 기른 잔디가 깔려있었고 이쁜 파라솔도 있었다.


"커피줄까?"

"아뇨.. 커피는 잘 못하고요.. 녹차있어요?"

"녹차는 없는데.."

"그럼 그냥 시원한 물이나 주세요."


영감님은 부산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었다.

"경상도 사람이 좀 드세."

"네 그건 알고 있어요"

"여기보다는 부산이 훨씬 낫지. 근데 부산에서 마사지하려면 조심해야되 깡패들이 다 뜯어간다고..거기는 다 그렇게 해. 조직이 있다니까."


헐...소오름...


"그거야 여자들 고용해서 하는데나 그렇지 뭐 남자 혼자하는데 깡패들이 오겠어요?"

"마사지를 어떻게 혼자해..그래가지고 되겠어? 여자들 고용해서 해야지. "

"그래도 전..그냥 혼자하는게 편하더라고요."

"하긴 자네 정도 실력이면 괜찮지."


영감님은 잔듸에 잡초를 뜯기시작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맛있게 뜸들여놨는데 코빠트린것 같은 기분이 든다. 뭐..파리에 갈때에도 그런 소리는 들었었지 휴대전화 할때 뻑치기 당하니까 벽에 붙어서 하라고... 그렇다고 파리에 가지 못한 내가 아니지..


차표는 충주 대전 부산으로 잡혀있다. 부산에 내리니 3시 30분.어떻게 파리에 갔을때보다 더 떨리는 것 같다.부산역을 뒤로하고 커피숍을 찾아 골목을 뒤졌다. 부산의 첫인상도 익히고..휴대폰 배터리도 충전해야 되었기 때문이다.

2

 

사실...나는 경상도에 대한 안좋은 추억이 있다.

꼬치구이 식당을 운영할 때 어떤 영감님 한분이 꼬치 두개와 막걸를 사서 드시며 하신 말씀이 있었다.

"나는 경상도 사람쪽이야."

"아..경상도 출신이세요? 근데 사투리 안쓰시네.."

"내가 경상도에서 태어난건 아니고.. 난 서울사람인데 경상도 사람이 나한테 맞다는 거야. 경상도 사람이 다 좋다는건 아냐. 내가 사기를 당해도 경상도 사람한테 더 당했지만 그래도 경상도 사람이 차라리 낫다는 거야. "

사실.. 어느정도 공감은 가는 부분이 있다. 나는 사람들이 참..착게 생겼다. 착하다..순하다..뭐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자랐지만 겉다르고 속다른건지..내가 문제가 있는건지 친구들이 이상한건지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한편이었다.





아니..뭐 저런 새끼가 다있다...아오 저십새끼...개 노므새끼.. 뭐 친구들이 다 그렇게 느껴졌고..언제나 인간이라는 존재에 실망을 안고
살았다. 이상하게 주변친구들이 다 그랬다. 그런데 꼭..아 이놈은 좀 괜찮네..싶은 친구가 있으면 그게 경상도 사투리 쓰는 놈이었다.

경상도 아들은...(애들은) 찌질하지가 않고 통이 크며 남의 말에 시비를 걸지 않는 듯하다.먼저 베풀고 뒤끝이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세상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것은 아니다. 예외도 있을 것이며 누구는 이렇다 누구는 이렇다 하는 것은 편견에 불과할 것이다.


아이엠에프 바로 전...신설동에서 10평짜리 화실을 운영할때였다. 그때 나는 악질 경상도 놈한테 된통당한 적이 있다.

3

 

내 화실은 신설동 로터리에 있었고 그 로터리 안쪽으로 들어가면 후미진 골목길이 하나 있었다. 그 골목길 안쪽에 코딱지 만한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얼마전 주인이 바뀐 모양이었다.후미진 골목으로 들어가는 길은 두어개가 있었는데 그 골목 앞 전봇대 앞에 얇은 책받침 반쪽만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간판이 한개 덜렁덜렁 달려있었다.

그러던 와중..언제부턴가 그 간판이 보이지 않는것이었다. 그러기를 한 이십여일 지났을까? 나는 그 자리에 내간판을 걸어야 겠다 생각하고 스티로폴을 이용하여 대충 만든 간판을 하나 만들어 달았다.

며칠뒤였다. 문앞에 붙여둔 종이 전화번호 하나를 누군가 떼갔다. 음...누군가 왔다갔나보다..그러더니 저녁때 즘에 전화가 왔다.전화번호를 떼간사람은 구멍가게 아줌마였다. 왜 남의 간판을 떼갔냐며 달아놓으라는 것이었다.


내가 띤게 아니라고 몇번 설명을 했지만 막무내가였다. 나는 화가 머리꼭대기까지나서 수퍼마켓에 찾아갔다.

"왜 자꾸 전화해서 귀찮게 해요. 내가 띤게 아니라니까요."


그런데 누군가 갑자기 튀어나와 나를 덮쳤다.마치 독수리가 토끼를 채가는듯했다. 그는 구멍가게 아줌마의 남편이었는데 내 목을 졸라서 길거리로 질질 끌고 갔다. 그리고 계속 내목을 졸랐는데 너무 심하게 졸라서 나는 죽겠구나 싶었고 그 새끼는 그리 젊어보이지도 않는데 왠 힘이 그렇게 센지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고 있는 듯했다.

4

 

잠시였지만 억센 억양으로 보아 갱상도 놈이 틀림없는 것 같았다. 지 마누라한테 큰소리 좀 쳤다고 죽기살기로 덤비는 꼴을 보니..대견하다고 해야 하나..인물났다고 해야하나..지새끼 지가족은 끔찍히 챙기면서 인류애라든지 동포애 박애정신등은 눈꼽만큼도 없는 2차원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하등인간임에 틀림없었다.


목이 졸려죽어가는 과정에서 갑자기 어디선가 백마탄 왕자가 나타났다.

"이것좀 놓고 얘기하세요."

죽기살기로 조르는 힘만큼 그도 죽기살기로 그를 떼어내고 있었고 나는 그덕에 풀려났다.생전 보지도 못한 낮선 사람이었다. 힘께나 쓰게 생겼고 얼핏 송영길 정도로 보이는 깍두기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고운 서울말을 쓰고 있었다. 나도 서울물 먹고 자랐지만 서울 뺀질이 놈들한테 웬만해서 도움 받아본 적이 없는데 웬일인가 싶었다.

 

부산 알라딘 중고서점


그에게 감사의 표시를 할 겨를도 없이 나는 그의 손을 빠져나가 경찰서에 전화를 하기 위해 화실로 돌아왔다.이건 살인미수나 다름없다. 그런데 화실앞에는 이미 경찰들이 와 있었다. 무슨말을 들었는지 경찰은 험악한 표정을 짖고 있었고 나와 수퍼 영감은 같이 경찰서에 들어섰다.


그는 간판이 어제 없어졌다고 주장했고 나는 20일이나 지났으며 간판을 내가 뗀게 아니라고 해명했다.별 말없이 그리고 우리는 경찰서를 나왔다.

갱상도 영감은 나에게 중얼거렸다.

"너..내 사촌동생 중에 성질 고약한 놈있어. 당장 다시 간판 달아놔. 안달아놓으면 너 다 박살나는 줄알아..니간판은 물론이고 너도 무사하지 못해. 내가 경찰서에 매달 꼬박꼬박 돈 갖다주고 있어. 경찰도 다 내편이라고.."

어쩐지 경찰이 별로 도움줄 의사가 없어보이는 듯했고 나는 경찰이 소용없으리라 직감했다.누가 간판을 떼갔는지에 대한것은 짐작가는 사람이 있었다. 화실 건물 사장 처남인데 간판집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좀..반 강제로 간판을 그에게서 했는데 사업에 대한 욕심이 지나친듯했다.자기집에서 간판을 하지 않은 간판은 살살떼어 버리는 듯했다.


그런데 그에게 해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통하지도 않을것 같고 뭐랄까 성질 더러운 놈한테 문명화된 해명은 사치처럼 느껴졌다.그리고 말없이 갱상도 영감의 협박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다음날 또 수퍼아줌마한테 전화가 왔다.


"빨리 간판 달아놔요."

5

 첨엔 어떻게든 버텨볼까 했었다. 그런데 그다음날에도 또 전화가 왔다.

"돈 줄테니 와서 받아가세요."

"내가 왜 거길가요? 간판 떼간 당신이 달아놔야지 빨리 달아놔요 우리 남편 성질 더러운거 몰라요?"

나는 간판집에 가서 이만원짜리 플라스틱 간판을 하나 주문하고 달아주었다.

땡땡 수퍼 화살표.

내가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한다 진짜..아오..그리고 잠잠했는데 얼마뒤 보니 그 간판이 반쪽이 나더니 며칠뒤에 보니 또 없어졌다. 사장처남이 또 손을 쓴듯했다. 설마 이번에도 날 의심하지는 않을듯 싶고 수퍼 부부는 말이 없었다.


곧이어 아이엠 에프가 닥쳤고 나는 화실문을 닫았다. 그놈년들하고 한동네 살지 않는게 다행이다 싶었다.내가 경상도 사람중에 저런 진상을 본적이 없는데 이상하다 싶었다. 혹시 착각한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경상도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갱상도 부부는 평생 내 뇌리속에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부산에 왔는데 과거이야기만 줄줄하려니 좀 성질 급한 나로서도 빨리 이곳에 짐푼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렇지만 이참에 경상도에 대한 추억들을 꺼내놓지 않으면 기회가 없으리라 생각되어 한번 더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부산 시립미술관


국민학교...그냥 초등학교라 하지 않고 국민학교라 칭하겠다. 과거의 이야기에 대한 예우가 아닐듯 싶어서.

답십리 국민학교 6학년때에 내 옆에 앉은 짝은 우수꽝 스러운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있는 경식이라는 친구였다. (가명) 무슨 말이 저런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서울말이 뭐가 어렵다고 왜 바꾸지 않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끝에만 올리면 되는거 아닌가 ↑ 뭐 그렇게 생각이 되었지만 그 친구에게 딱히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것은 아니다.


경식이는 잘생기고 점잖았으며 언제나 등을 꽃꽃이 세우고 붓글씨와 같이 또박또박 잘 쓰는 글씨체를 가지고 있었다.누누히 이야기했지만 순수한 내가 국민학교때부터 친구들과 항상 불화를 겪었던것은 내탓이 아니고 모두 그새끼들 탓이다.


그랬듯이 나는 그 친구와도 불화를 겪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점잖아 보이는 그 친구도 다른친구와 딱히 다른 상황은 아닌듯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처럼 조용한 분화구속의 용암이 솟구쳐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6

 

나는 경식이 한테 그냥 별말 하지 않았는데 그가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일이 잦아졌다.

뭐내가 딱히 밉상이라거나..사람 성질긁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그냥 좀 농담으로 하는 말들이 그에게는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듯했다. 뭔가 코드가 맞지 않는듯했다.

딱한번 ...아니 두번...그에게 미안했던것은..

시험이 끝나고 시험지를 걷을 때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 그가 답을 고치는 것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야. 16번문제 답이 3번이니 4번이니?"

"3번이야 "


"아냐 4번이야.."

뭐 이런 말들이 오가고 있을때에 경식이가 3번으로 썼던 답을 서둘러 4번으로 고치고 있는것을 보았다.

"야..시험끝났는데 답을 고치냐?"

나는 부정을 저지른 그를 지적했고 그는 벌컥 화를 내었다.

"다시 고치면 될거아이가..내참 참말로. 니와카나.."

그리고 짜증난다는 듯이 3번으로 원상복귀했는데 정답은 3번이 맞았다.

"야..그거 3번이 맞아."

"어 그래?"

내덕에 한문제 깎이는거 막았으니 나한테 감사해야 할일이다.


그리고 한번은 미술시간에 내그림을 그대로 베끼는 걸 보고..

"야..남의 그림을 모방하냐?"

그랬더니 또 벌컥화내면서 그린 그림을 다 지웠던 적이 있었다. 그냥 모른척 해줄걸..이건 내가 생각해도 좀 미안했던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그와나의 불화의 씨앗이 바로 이것이었던 것같다. 그리고 그는 사소한 내 대화에 딴지를 걸기 시작했던것 같다.

어느날..그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앞에 앉은 친구에게 큰소리로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뭐 이러이러해서 어이없고 이러이러해서 말도 안되고 이러이러해서 못됐다면서 줄줄이 늘어놓고 있었고 나는 그냥 그러려니하고 못들은척 했다. 뭔소리 하는건지..잘 모르겠지만 그래야 니속이 풀린다면야..

부산 국제금융센터(왼쪽)와 부산은행(가운데)



그리고 우리는 각기 다른 중학교를 갔다. 그리고 고등학교 일학년때에 같은 반이 되어서 만났다. 그리고..같이 미술부에 가입했다. 미술부 회원은 1학년만 8명 정도 되었고 매일저녁 집에도 못가고 밤 열시까지 그림을 그리다가야 한다. 그와 나는 또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게 된것이다.

그는 폭풍성장해 있었다. 키는 나하고 같았지만 덩치에 있어서는 완전 밀렸다. 나는 왜소한 편이었고 그는 체중이 80키로가 훨 넘어보였는데 배가나오거나 살이찌지도 않았다. 얼굴은 탤런트 손창민과 비슷하고 미남형이었다. 그집은 아들 삼형제가 다 그랬다.

그리고 그는 미술부 반장으로 추대되었다.


7

  

 다음           HOME

 

  massage-korea.com all rights are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