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 일기

2020 4 20 ~ 2021 4 20



43세때 역마살이 들어 서울을 떠난뒤 십여년간 여러 곳을 전전했는데 점촌은 다시 서울로 입성하기 전에 일년간 있었던 곳으로 경상북도 문경의 한 마을이다.

문경에 대한 이야기는 이사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는데 수안보 온천에는 문경새제에 들렀다가 오시는 분도 꽤 계셨다.

어느 때는 문경의 한 수퍼마켓 전단지가 수안보 마사지실 문앞에까지 온 경우도 있어 그리 멀지 않은 곳임은 직감했었다.

"조그만 동네죠. 뭐."

한 단골 손님이 계셨는데 점촌사신다길래 점촌이 어디냐니까 그냥 조그만 동네란다.

그 조그만 동네를 곧 내가 들어가 살게 되었는데 지금부터는 점촌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그런 생각 해 본 적 없는가? 당신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 가진 재산 다 팔아서 아프리카로 황제 이민을 갔다치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려니 자금이 없어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고 결국 아프리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서울을 떠나 여러곳을 전전하면서 그러한 불안감 또한 없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시는 서울 땅을 밟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 뭐 서울에서 40여년이나 살았으니 다시 서울을 못간다 쳐도 크게 아쉬울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다시 서울로 돌아왔고 다시 돌아올수 있었던 비결은 돈을 많이 벌어 금위 환향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무일푼으로 떠났다가 무일푼으로 돌아왔으며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가능했다.다 방법은 있다. 대부분은 몰라서 못하고 있을 뿐이다.


충주 수안보 온천에서 4년을 지내고 난 후에 다음 행선지를 어디로 정해야 할지 막막했고 아무런 계획도 없었다. 그 당시 나는 풍수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었던 터라 이왕이면 풍수가 좋은 곳을 찾아보자는 욕심이 들었는데 몇몇 풍수가가 하는 말이 서울은 한강이 있어 물 가까운 서울이야 말로 최고의 풍수라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십년간 몇몇 대박나는 곳을 짚어주기를 평택 남부 팽성읍 충남 당진 그리고 대구 등등이 있었다. 지도를 살펴보니 당진은 지하철은 물론이고 기차역도 없는 곳이라 포기하고 대구를 가봐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평택을 가던 대구를 가던 우선 기차역을 가야 하는데 가장 가까운 기차역이 문경 점촌이었다.그래서 점촌에 들렀는데 이왕 온김에 여기서도 좀 자리가 있는지 보자 싶었고 부동산에 들렀는데 월 25만원 상가주택을 하나 보여준다.

수안보에 45만원 월세가 싸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바가지였던 셈이다. 사실 평수에 비하면 바가지는 아니겠지만 괜히 큰 평수 쓸 필요 없으니 월세를 더 바짝 줄여야 한다.

25만원이면 내 형편에 딱 맞는 곳이다. 3층이기는 하지만 방이 세개나 있고 건물도 반듯하고 뒤에 바로 로데오 거리가 있는데 분수도 있다.

야.. 이런 곳에 월세가 25만원? 게다가 수안보에서 기름보일러 때문에 개 고생했는데 여기는 전기보일러? 이건..못참지.. 일단 찍어두고 대구로 향했는데 한 50만원정도로 근사한 곳이 몇군데 눈에 띄기는 했다.

대구역 바로 건너편 신호등 있는데 이층이 50만원? 이거이거.. 무슨 함정이 있지 않고서야...

평택 팽성읍은 당진이나 마찬가지로 기차나 지하철이 없는 곳이라 아무리 풍수 유망지역이라 하나 들어가기는 무리가 있다.

근처 온김에 오산도 둘러보았는데 대구만큼이나 욕심나는 자리는 꽤 있었다.

수안보 상가 인테리어에 난방 문제 때문에 개고생 한 경험이 있는지라
결국 난방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되어있고 샤워시설 갖췄지 인테리어 할필요 없지 월세 싸지.. 점촌으로 낙점하게 되었다.

여기서도 맨손 인테리어가 시작되었고 약간의 손만 대고 100만원 정도 만 지출했는데 50만원은 바닥 몰딩을하는데 쓰고 나머지는 페인트 조명 간판등등에 쓰였다.

바닥 몰딩은 사람을 불러서 했는데 서울과 지방의 차이라 할까.. 괜히 서울이 아니구나 하는 걸 실감한 경우이기도 했다.

점촌의 까페나 왠만한 식당의 인테리어는 서울 못지 않다. 로데오거리에 분수 있는곳 있으면 나와보라그래..

그런데 업체를 잘못골랐는지 어째 하고 보니 허접한게 좀 어이가 없다.

"총 안 쏘세요? 벽지위에 붙이면 나중에 벌어지지.."

죄 짓다 들킨 것 처럼 몰딩기사는 멋적게 웃으며 그제서야 총을 가져오겠단다.

총이야 나도 있으니 그냥 이걸로 써도 된다고 해서 내 총을 썼는데 알고보니 이 총이 몰딩용 총이 아니라서 못대가리가 다 보이는것이다.

나야 몰라서 그랬다 치고 몰딩기사는 그냥 자기거 가져오기 귀찮으니까 알면서도 내 총을 쓴 것이다.

그 정도는 내가 여기서 평생 살것도 아니고 내집 아니니 봐준다 치고 몰딩끝났다길래 보니 실리콘을 쏘지 않은 것이 아닌가 실리콘 비싸다며 알아서 쏘란다. 헐. .. .

이양반이 지금 충청도질 하시는겨? 걍 그까이꺼 대충. . .

업체 주인은 문경 분이신데 몰딩기사는 충주분이시란다.

문경과 충주는 바로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선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경계선만 넘어가면 사람들의 말투는 충청도 억양에서 경상도 억양으로 바로 달라진다.

할 수 없이 할 줄도 모르는 실리콘 쓰다가 덕분에 실리콘 사용 비법을 발견했다. 실리콘 손잡이 뒤에는 걸쇠가 하나 있는데 그 걸쇠는 풀어주면 실리콘이 누르지도 않는데 질질 새는걸 막아준다.

그래서 왠만한데 실리콘 쏘는 정도는 혼자서도 할수 있게 되었다.

나원참. . .비법 터특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지. .

몇군데 손 안댔는데도 역시 2주가 걸렸고 이쁜 마사지 실이 완성되었다.

간판은 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현수막을 주문하여 다는 것으로 때웠다.

토요일날 로데오 거리에 나가보니 식은 땀이 흐른다. 허걱 뭐야.. 다 어디갔어. 두어사람 왔다리 갔다리 하는게 전부였고 텅텅 비었다.

코로나 이전이었는데 이미 경기는 바닥이었다. 사실 인구 소멸지역에 해당하는 문경 뿐 아니었다. 대구의 재래시장을 갔는데 재래시장 맞나 싶었다. 사람이 없는것이다.

현재는 모든것을 코로나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이미 거리에 사람이 사라지고 없었다.

서울도 크게 다르지는 않고 압구정에 사람그림자 찾기가 어렵다는 말을 들은바 있기는 했다.

생각해보면 지금 시대는 전자상거래로 배달이 모든것을 해결해주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만남은 대개 카톡으로 하고 굳이 서로 얼굴 맞댈 필요도 없다.

이렇게 조용한 동네에 과연 몇사람이나 올까...25만원이 마냥 싼게 아니었던 것이다.

"원룸이네예 뭐"

테리우스와 안소니는 이곳 토박이이지만 내가 25만원짜리 월세 산다고 하니 원룸수준의 집이라는데 이해는 잘 안간다. 그럼 다른 집은 안그렇다는 것이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들이 서울 살다온 것도 아니고. .

테리우스와 안소니는 점촌의 굴삭기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이었다. 테리우스는 만화속 테리우스가 그러했듯 목을 덮을 만한 긴 단발 머리였고 안소니는 방긋 거리는 미소를 지니고 있어서 그렇게 호칭하고자 한다.

테리우스는 90키로에 육박하는 몸에 턱수염 그리고 머리까지 길렀으니 내가 즐겨 그리던 달마도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얼굴은 코가 우뚝 선게 미남형이고 말이 없고 왠지 모르게 비밀을 간직한듯 카리스마를 뿜어대니 살이 좀 쪄서 그렇지 테리우스가 딱 맞아보인다.

안소니 역시 체중은 많이 나가보인다. 뚱뚱한 타입은 아니지만 뼉다구가 굵어보인다.나이는 나보다 대여섯살 어리지만 흰머리는 나보다 많이 났는데 머리카락이 짧고 밝고 경쾌해 보이는 성격에 안소니라 칭하겠다.

그러니까 테리우스와는 반대적인 캐릭터다.

나는 그럼.. 캔디? 흰머리 커버하겠다고 거의 삭발에 가깝게 짧은 머리 때문에 캔디는 무리고 그냥 닐 정도로 하겠다.

닐이 누구냐고? 캔디 괴롭히던 악역 이라이자 오빠인데 나중에 캔디 좋아하다 차인다고 한다.

이주간의 준비기간 중에는 떡집도 포함되어있었다. 수안보에 있었을 때는 물론이고 장사하면서 한번도 떡을 돌려본 적이 없었다.

떡을 돌린다는 것은 왠지모르게 뇌물.. 또는 주변 사람들에게 좀 봐달라는 뜻이 포함된 떳떳하지 못한 그런것으로 느껴져 하지 않았다.

비굴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떡 돌린다고 내가 그사람 집 물건 팔아주는것도 아니니 괜한짓에 불과하다 싶다.

실제로 누군가 근처에 가게 오픈했다면서 떡을 가져왔는데 한번도 그 집에 가본적이 없었으니 괜한짓 하셨다 생각이 된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들어 떡을 할 생각을 했을까? 꼭 장사가 목적이 아니라 정말 이동네 사람들과 한번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속에서 우러났다고나 할까....

아니면.. 작은 동네이니 이렇게 떡하고 비집고 나타난게 민망하기도 하니....인사라도 하자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런 생각이었다면 수안보에서 이미 떡을 돌렸어야 했다 본다. 그런데 수안보에서는 뻔뻔 스럽게 맨손으로 달랑 호텔들을 찾아가 손님 있으면 보내달라고 명함을 놓고 왔었고 정말로 그분들은 마사지 찾는 손님들을 보내주기도 하였다.

정말 큰 감사할 일이 생긴것인데도 나는 아무런 보답도 하지 않았었다.

몇번 그렇게 하고 나니 떡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닳았던 것 같다. 어차피 감사치례 할거라면 미리 떡이라도 갖다 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명함만 돌릴 것이 아니라 떡하고 같이 돌려야 겠구나. 이런것이 바로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장사노하우라는것이지.

떡의 효과는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떡의 효과는 놀라웠다. 떡을 받으신 앞집 중국집하고 귀금속 가게에서 10명이 넘는 손님을 불러다 주신 것이다.

충청도와 문경 점촌은 근접 지역이라 같은 지역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왜 말은 확연하게 달라질까?

아마 학군에 따라 아이들의 학교도 경상도로 편입이되고 경상도 학교를 다녔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성격은 충청도와 비슷한 면이 있다. 어딘가 모르게 답답하다는 것이다.

충청도는 중앙에 속하며 중앙은 토에 해당한다. 토는 진술축미의 4고지에 해당하며 모든 오행이 입묘하는 자리다. 즉 무덤이라한다. 그러니 답답하다.

쉽게 말해 선풍기의 중앙과 같다. 선풍기의 중앙은 움직이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이 충청도의 성격이다.

마찬가지의 현상이 이곳 점촌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점촌은 경상도의 북부 끝에 위치 하고 있으니 중앙과 같은 것이다. 결코 대구나 부산사람과 성격이 같다고 볼수는 없다.

로데오 거리 건너편에 재래시장의 한 떡집에서 떡을 맞췄는데 집에 가져와서 보니 세상에 개업 떡이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떡을 하나하나 포장을 하지 않고 박스에 통째로 담아놓은것이 아닌가.

아니 개업떡을 이렇게 해주면 어떡하냐고 하니 따로 포장해달라는 말을 안해서 그랬다며 그제서야 따로 포장을 해주겠단다. 와 서울 뺀질이도 이정도는 안하겠다. 오지랍 레벨 알만하다. 담쌓고 사셨다.

오픈 한달동안 든 손님이 수안보에서와 비슷할 정도로 장사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손님 중 대부분은 점촌 사람들이 아니었다. 수안보에 오셨던 단골손님들도 몇분 계셨고 SNS를 보고 두시간씩 되는 거리에서 차를 몰고 오신 분들도 상당히 있었던 것이다.

서울이나 경기 쪽에서 오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이럴 바에는 굳이 간판이 필요가 없다. 간판 안 쓰는 곳이라면 서울에서도 얼마든지 자리를 잡을 수 있지 않겠는가.

결국 그래서 다시 서울로 입성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었다. SNS의 힘을 그때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한 두달 정도는 괜찮았고 밥벌이는 하겠다 싶었는데 갑자기 코로나가 터졌다.

오던 손님이 뚝 끊켰고 두달동안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어 나는 생계를 위해 노동부를 다시 찾았다.

노동부는 이미 몇차례 이용한 적이 있었고 이번이 세번째였다. 처음에는 한 마흔 넘어서 했었는데 할만한게 뭐가 있을지 고민하다 웹디자인을 선택했다.

서른살 쯤에 너무 욕심을 내서 컴퓨터 그래픽에 도전했다 실패했으니 그냥 잡지 편집이나 하는 일러스트레이터나 포토샵을 배우면 되겠다 싶었는데 나이가 너무 많아 역시 잘못 선택한 경우에 해당했다.

그냥 포토샵 좀 배우고 집에서 썸네일 만들 때 써먹는 걸로 만족하고 있다.

다음해에는 코딩을 좀 배워보자 싶어 다시 신청했고 취업이 아니라 그냥 배우는것이 목적이었는데 간신히 로그인 하는 페이지 하나 만드는데는 성공했고 그렇게 끝났다.

이번에는 정말 취업해야 한다. 나이에 관계없이 할수 있는 일 과연 무엇이 있을까? 굴삭기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첨엔 자격증만 따면 그까이꺼 할수 있을줄 알았다. 그런데 노동부에서는 쉽지 않다 말해준다.

경력이 있지 않으면 써주는데가 없다는 것이다. 지게차는 취업이 가능하지만 역시 힘든일이란다. 물건 나르는 일도 해야 하고 노가다란다.

어쨌든 내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니 우선 지게차를 목적으로 하되 굴삭기도 따두면 나쁠 것은 없으니 같이 수강하기로 하고 근처의 중장비 학원에 등록하였는데 접수처만 근처고 실제 학원은 차타고 한 삼십분 가야 하는 거리에 있다.

서울에서는 차가 필요없지만 미국가면 차가 필수라듯이 시골에서는 반드시 차가 있어야 한다. 버스 닿지 않는 곳에 가야 할 일이 많이 발생한다.

출석시에는 학원에서 차를 태워주는데 올 때는 알아서 오란다. 남의 차 얻어타고 와야 된다는 것이다. 다들 그렇게 한단다.

성격상 남한테 빌붙기 싫어하는데 뭐좀 살다보면 남한테 신세질수도 있지 얼굴에 철판 깔기로 했다.

사람 사는데 어떻게 평생 남한테 신세 안지겠는가. 서로 돕고 사는 세상이니까.. 서로 시세지면서 친해질수 있는 기회도 만드는거지.

"안녕하세요."

흰머리가 늘어서인지 먼저 인사해오는 사람이 종종 있다.

특히 이곳 점촌에는 그렇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자꾸 인사를 해서 내 뒤에 누가 있나 싶어 뒤돌아 보면 아무도 없다.

심지어 한 70대 되어보이는 양반들이 나한테 먼저 인사를 한다. 아오.. 내가 그정도로 늙어보인단 말이야? 킹받네..

점촌 사람은 아닌데 굴삭기 학원에 처음 들어서자 먼저 나한테 인사하신 분은 덩치가 90키로는 되어보이는 남성인데 역시 흰머리는 나만큼 났지만 나이는 10년 정도 어렸다.

오지랍이 좀 넓은듯한 그 분은 해외파였다. 남미 영주권자라하니 곤잘레스라 칭하겠다.

테리우스와 안소니도 덩치가 컸지만
곤잘레스도 마찬가지였는데 굴삭기 운전원으로 왠지 큰 덩치가 어울릴듯 할것 같지만 모델 뺨치는 갸녀린 여성이 하이힐 신고 굴삭기 운전하는 영상도 본적이 있다.

기계는 힘으로 하는것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것이지 힘쓸것같으면 기계가 필요가 없겠지.

그렇게 덩치큰 수강생들은 세명이 전부였다.

테리우스는 주변을 둘러보는 법이 없었다 오로지 칠판만 보았으며 수업이 끝나면 휘다닥 밖으로 나갔다. 뭔가 세상살이에 지친 듯 해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너희들한테는 관심없다는 듯한 분위기가 흘렀고 실제로 그랬다. 관심이 없으니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는 것일테고 실제로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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