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 일기

2021 4 20 ~ 2023 9 10



아날로그와 디지털.

내가 태어났던 세계는 손으로 채널을 돌려야 하는 티비의 시대였다.심지어 전화도 손가락으로 돌리는 시대였다. 이제는 누르는 시대로 넘어가며 디지털 세상이 본격화 되었고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세상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였고 아날로그 시대에서는 초딩학생 영어나부랑이나 가르치면서 아무것도 할수 없었던 나에게 빌게이츠는 홈페이지를 만들고 마사지 손님을 모을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그와 동시에 모든 세상은 컴퓨터안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고 그렇게 십년간을 나는 컴퓨터와 싸우며 장사를 했다. 그렇지만 왜 그런거 있지 않은가...십년간 잘 지내던 남편도 갑자기 꼴보기 싫은때도 있고 . .괜히 십년전 나좋다고 쫒아다니던 영희가 보고 싶어질때도 있다.

어느날 나는 갑자기 아날로그의 세계가 그리워졌다. 그리고 마사지를 접고 안락하고 편한했던 컴퓨터의 가상현실속에서 뛰어나와 현실과 마주하기로 결심했다. 그냥 세계는 지금에서 보면 되는데 비행기 표를 끊고 파리와 뉴욕으로 날아갔다. 거기서 마주한 생생한 세상은 좁은 컴퓨터의 세상과는 무척 달랐다.

그리고 오년간의 방황의 세월이 있었다. 아날로그의 세상은 쉽지 않았다.막걸리집도 해보고 통역회사도 다녀보았지만 모두 내길이 아니었다.다시 마사지를 시작하기로 결심하면서 나는 아직도 디지털의 세계로 들어오지 않았다. 간판 걸고 하는 마사지를 시작한 것이다.

로드샵이라고 한다. 로드샵은 서울에서 할수 없다. 세가 워낙 비싸기 때문이다.그래서 내려간 곳이 처음에 충주 수안보였고 그다음이 부산 그리고 그다음이 다시 수안보 그리고 그 다음이 문경 점촌이었다.

아날로그의 배신

문경 점촌에서 손님들을 맞아보니 간판 보고 오시는 분은 거의 없었고 대개 SNS를 보고 오시는 손님들이었다. 펜데믹으로 손님은 거의 없었고 근처 학원에서 중학생 영어를 가르치기도 하고 이제 마사지는 접고 굴삭기를 해야겠다 싶어 굴삭기 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만일 굴삭기 운전에 합격했다면 나는 완전히 디지털 세계를 떠났을 것이다.다행인지 불행인지 굴삭기는 불합격했고 지게차 시험은 합격했는데 나는 아날로그의 세계에 험난한 과정을 그대로 체험하게 된다.

쿠팡에서는 지속적인 지게차 운전원 모집이 있었는데 다소 냉랭했던 다른 업체와달리 누구나 합격한다며 사람들을 불러들였다.가보면 역시 다정한 말투와 안심시키는 지도력을 발휘하며 사람들을 시험장으로 끌고간다. 그 시험장은 한겨울 엄동설한에 그들은 마치 에스키모 주민인듯 방한복이라도 입었지 지원자들은 그냥 택도 없는 두꺼운 겨울옷 입었을 뿐 아무런 난방시설도 없는 찬바람 부는 시베리아 벌판이었다.

단지 다른 사람의 시험이 끝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서 서있는 두시간은 지옥과도 같았으며 문경에서 서울까지 먼길을 마다하고 찾아왔건만 모두가 합격한다는 것은 사탕발림에 불과했다. 시험을 치른후 두어사람 남겨놓고 모두 돌려보낸다.한겨울도 문제지만 한여름은 더 곤욕일 것 같다. 땀 비오듯 흘리고 나서 샤워하라고 구텡이에 샤워장도 갖추고 있다.

이런데서 일할 바에는 차라리 공장에서 단순노동하는것이 백번 편할 것 같다.뭐하러 힘들게 자격증 얻어서 고생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그렇다고 월급이 공장보다 한푼이라도 더 많은 것도 아니다.그런데 나이가 있어서 공장에서조차 받아주질 않는다.경비직은 나이많은 사람들 있는 것 같던데 차라리 그게 낫질 않을까?여름에 시원한 에어콘 겨울에 훈훈한 온풍기 맞으며 일한다.

결국 굴삭기나 지게차에 쏟은 노력은 모두 헛짓거리로 돌아갔다.그러다가 문경 점촌에서의 계약기간이 마감될 때즘 나는 서울로 상경하기로 결심을 굳혔다.간판없는 장사를 시작해 볼 참이다. 그러니 비싼 월세 내지 않아도 된다. 최대한 작은 빌라 하나를 개조해서 사용할 것이다.

디지털 세계로의 귀환

즉 다시 디지털 세계로 귀한 한 것이다. 십년전의 디지털 세상과 십년후의 디지털 세상은 많이 달라져있었다. 그때에는 모든것이 홈페이지로 돌아갔다. 닷컴세상이었다.닷컴이 수십억에 거래 되기도 했고 KOREA.COM은 오십억에 팔렸다.그런데 이미 나는 홈페이지를 모두 접은 상태였고 다시 만든다 해도 포털 사이트에 등록이 되지 않았다.네이버는 이상하게스리 복잡한 방법으로 등록 방법을 변경하더니 등록된 모든 사이트들을 내려버렸다.

과거와 달리 포털은 이제 광고비를 받은 사이트를 상위노출 시켜주니 거기 등록되도 헛일이었고 검색하면 바로 떴던 구굴에서도 내 홈페이지는 찾아볼수 없었다. 내가 다시 시작했던 것은 SNS였는데 나는 이것이 새로운 디지털 세계를 열어줄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홈페이지세대에 익숙해져 있어 중요성을 몰랐던 것이다.

그냥 심심해서 올리던 영상들이 떡상을 했지만 그 영상보고 오시는 손님들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대개 그분들은 점촌 사람들이 아니었고 인천에서 오시는 분 서울에서 오시는 분 대구에서 부산에서 등 전국에서 오시는 손님들이었다. 어쨌든 나는 점촌에서 그나마 몇 안되는 손님들이 대개 SNS를 보고 아주 멀리서 오신다는 것을 알고 SNS 손님들로 시작해보자 싶어 서울로 향했고 간판없는 디지털 장사는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서울에서의 성공은 놀라웠다. 어디서 보고 오시는지 손님들이 물밀듯이 몰려들었다. 내 SNS는 이미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수안보나 인구 7만 점촌에 짱박혀 빛을 보지 못했다가 서울이라는 물을 만나면서 물만난 물고기가 된것이었다.

다시 디지털 세상은 열렸다. "찐팬할께요." 하면서 윙크를 날리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연예인 본것 같다며 신기해 하시는 분도 계시는데 나는 그냥 날 찾아오시는 분들이 더 연예인 같을 뿐이었다.

상일동역 도보 십분 거리 고덕동으로 자리를 잡은데는 이유가 있다.가진것 없이 월세를 전전하며 살다가 인생 역전의 기회는 로또도 아니고 경마도 아니었으며 내가 믿을 것이라고는 없는 사람도 단박에 부자로 만들어준다는 풍수였다.

풍수를 보니 갈만한 곳이 고덕동인데 위치상 딱히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너무 외곽이지 않은가. 노량진과 고덕동중에서 고민하다가 발품팔기도 너무 지쳐 그냥 고덕동으로 자리를 잡았다.보증금 오백에 월세 삼십만원의 그곳 빌라는 딱 간판하기 좋은 구조로 되어있었고 3층 구석에 있어서 독립적인 공간이 보장되는 신기한 건물이었다. 백만원정도의 인테리어비용을 지출했는데 가능한 허름한 곳을 그대로 살리는 독특한 인테리어를 연출했다.

처음에 손님들이 들어오시면 시커먼 벽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지신다. 보다보다 저런 벽은 첨본다 싶은 모양이다. 그런데 아무런 말도 안하는걸 보면 인테리어가 먹혔다.벽지를 뜯어내고 그냥 그위에 유화작품을 걸었던 것인데 그 벽이 시멘트에 본드가 잔뜩 발라져 있는 기괴한 벽이었다.만일 그걸 벽지로 바르고 말끔하게 했다면 잘해봐야 빌라 느낌밖에 나지 않을 것이니 반대로 간 것이었다.

예전에 금정역에서 6평짜리 막걸리 집하면서 식당은 허름해야 제맛이라 생각이 되어 벽지 뜯어내고 거기 신문지 붙였더니 오시는 손님마다 왜 도배를 안했냐.. 벽이 왜그러냐.. 그러질 않나 뭐 자기는 대단하것 처럼 삼천원짜리 닭꼬치 먹으면서 갑질이 대단들 하시던데 그보다 더했던 고덕동의 벽은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마 금정역의 노후 인테리어가 좀 어설퍼서 그랬던 모양이니 허름하려면 확실하게 허름해야 할 모양이다. 8월달들어서면서 점점 손님이 뜸해지더니 일주일간 손님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여름이라 뙤약볕 받으면서 먼길 오실 손님이 많지 않을 수 밖에 없는것은 사실이다.

다시 아날로그

그때 갑자기 공황장애가 발생했다. 말만듣던 공황장애를 직접 겪고나니 이대로 죽나 보다 싶기도 했다 숨이 안쉬어지는 것이다.손님이 없어 불안감에 공황장애가 발생했나? 여기보다 월세 비싼 수안보에서도 한달 내내 손님 없었을때도 있었지만 내 팔자려니 하고 생각했지 공황장애는 없었다.문경에서는 펜데믹으로 일년내내 손님이 없었던 때도 있지 않았는가.

공황장애는 햇빛을 많이 받아야 한다. 어두컴컴한 실내에 오래있다보면 공황장애 발생한다. 연예인들이 공황장애 많이 걸리는 이유가 그들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외출을 많이 꺼리기 때문이다.조금이라도 햇빛을 더 받고자 어깨까지 팔뚝 없는 검정색 나시를 더 줄여서 거의 끈처럼 만들고 마치 레드카펫 밞는 여배우 드레스처럼 등을 훅 파버리고 입고 한여름 땡볕아래 돌아다녔더니 공황장애가 좀 잦아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공황장애에 걸렸던 이유는 잘못된 곳에 들어왔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한 상세 내용은 강남일기에서 계속됩니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 특히 마사지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수입을 예측할수 없기 때문에 항상 불안감에 시달려야 한다.월급 따박따박 받는 직장인이 부러워지게 된다.

그래.. 직장도 가지고 마사지도 하면 되지 않겠는가. 원래 사주에 직장운이 없는 것은 알고 있다. 워크넷에 수백군데에 이력서를 냈는데 면접보자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직업소개소를 찾았더니 한 호텔 주방장자리를 안내해준다.

강남 오성급 호텔 세척반

면접을 보러 간 곳은 강남의 한 오성급 호텔 일층 부페였다. 오성급 호텔 주방장이라면 성공한 케이스가 아닌가. 6개월만 세척실에서 일해주면 주방장이 되고 월급이 300만원이 된단다. 면접 주방장님은 친절하고 자상해 보였고 나를 믿고 후원해줄 듯 한 모습이었고 구세주처럼 보였다. 알고보니 속이 시커먼 소시오패스였다.

그 호텔의 세척반에 쓰레기 치우는 사람이 두사람이 필요한데 한사람 밖에 없는지라 일이 돌아가질 않고 있는 상황이었고 쓰레기 꾼으로 쓸 한사람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사탕발림을 그럴싸하게 입혀 6개월 후에는 주방에서 일하고 일년후에는 주방장이 되니 어쩌니 꼬드긴담에 평생 쓰레기 꾼으로 써먹을 예정이었던 것이다.

첫날부터 쓰레기장을 안내하길래 거기 쓰레기장 고참한테 살살 캐물어보니 여기서 주방으로 간 사람 한사람도 없었으며 월급인상도 한번도 없었다 한다. 나는직업소개소에 항의 전화를 하였고 주방장이 다시 전화가 왔다. 곧 퇴사할 사람이 있으니 조금만 일해달라....허일씨를 믿고 있으니 좋은 자리를 배정해주겠다.

부 주방장도 하는말이 다 믿바닥 부터 올라오는 것이고 자기도 다 거친 과정이니 일하다 보면 좋은 날이 있을 것이란다. 내가 하는 일은 세척반에서 설겆이한 접시들을 제자리에 갖다 놓는 손이 바쁜 일이었고 아침에는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들을 분리수거 하는 일이었다.

"아이구.. 끌려가서 욕 잔뜩 먹었어. 너 입 꾹 다물고 있어! 그러더라구. "

이 새키들이 구라를 치는것이 분명한데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사이도 없이 나는 그냥 발이 묶여 버렸고 한심한 처지에 어깨가 축쳐졌다. 이제 내인생은 여기서 썩는건가 내가 나이 오십중반이 넘어 머리는 허얘져 가지고 여기서 쓰레기 치우려고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살았단 말인가.

식당 밥은 호텔이니만큼 먹음직 스러웠다. 왕년에 호텔 알바하다가 픽업되서 좋은 자리 배정 받은 적도 있었는데 발로 걷어차고 나온게 나였다. 좋을때 안하고 이제와서 쓰레기나 치우게 됐으니 사람이 나이먹고 돈없으면 장사가 없다싶다. 그러게 젊었을때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한다는 어른들의 옛말이 하나도 틀린게 없다.

발목까지 오는 긴 세척반 장화를 신고 쓰레기장 고참하고 밥을 먹고 있는데 옆에 식당 설거지담당 아줌마들이 모여 밥을 먹고 있다.

"여기 저녁에는 몇시까지 하나요?"

" 저녁 7시 반에는 문을 닫으니까 그 전에 오셔야 되요. 이번에 세척반에 새로 오신 분이세요?"

"네"

"근데 너~무너무 멋진 분이시네요"

"아..."

눈이 휘등그래져서 하시는 말씀이 너무 멋진 분도 아니고 너무너무 멋진 분이라니 거기다가 그녀는 내가 평소에 별로 자신없었던 오른쪽 얼굴을 보고 있었고 흰머리는 덥수룩..암담한 미래에 낙담하고 있는 와중에 도데체 뭘 보고 너무너무 멋있다는 건지 납득이 가지 않아 감사의 대답도 못하고 그냥 어이가 없어서 말문을 닫아 버렸다.

하긴 흰머리가 덩치큰 60대 식당이모한테는 오히려 득점요소가 될수도 있겠으니 너무너무 멋진게 틀린말은 아닐수도 있겠다싶다.. 너무너무 멋지다는게 소문이 났는지.나한테 관심갖는 식당 이모는 그분 한분이 아니었고 내가 식당에 올때마다 덜덜 떠시면서 이것저것 먹으라고 챙겨주는 이모가 또 한분 계셨는데 아마 그분도 나를 너무 너무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세척반일은 그냥 좀 힘들긴 해도 버틸만 했다. 쓰레기장은 거의 선배가 도맡아했고 6년째 일하고 있다는 그분은 그것이 천직인듯 자기 자리 뺐길까봐 내가 손대는 걸 싫어했다.

보름 일하고 나서 첨에 사탕발림 하던 부주방장이 갑자기 갑질을 하길래 바로 사표썼다. 그리고 그들의 계략은 그렇게 물거품으로 돌아갔고 들리는 말에 의하면 아직도 그집은 사람을 못구해서 고생이란다.

직장이 공망이면 절대 직장에 관심두지 말라 제아무리 당신이 너무너무 멋진 사람이더라도 쓰레기나 치우면 잘 대접 받는 것이다.

사실 내짐작은 과대망상이고 그분들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낙하산도 아니고 첨부터 대접 받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쓰레기는 말단이면 누구나 해야 하는 것이고 그러다보면 언젠가 저 멋진 하얀 주방장 모자를 쓰게될 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원했던것은 마사지를 포기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투잡자리를 알아보려던 것이었으며 마사지는 부업이 아니라 메인이 되어야 했다. 그 호텔의 근무시간이 어중띠어서 이도저도 안될 것같아 포기했던 것이다.

강남 잡지사 빌딩 경비

직업소개소를 가고나서 알게된 사실인데 내 나이에 할만한 그럴듯한 직업이 하나 있다. 경비직이다. 아파트 경비직은 못할 것 같고 건물경비는 할수 있을 것 같다. 월 이백삼십만원 정도된다. 그런데 내가 욕심냈던 직종은 호텔데스크였다. 월 삼백삼십만원 준단다. 그런데 운전면허가 있어야 된단다.예전에 운전면허 이종 보통 있었다. 그런데 차도 없지만 서울살면 도데체 차 쓸일이 없다.짜증나서 갱신 포기 하고 운전면허가 취소됐는데 후회막심하다.

문경에서 굴삭기 시험을 치고 나니 운전면허도 있어야 한단다.그래서 일주일 공부해서 이만원 내고 필기시험을 쳤고 합격했다. 그런데 그만 실기시험 놓치고 나니 유효기한이 지나 다시 필기시험을 쳐야 한다.일주일간 또 커피마시면서 벼락치기 해서 합격했고 이제 실기시험을 쳐야 하는데 학원비가 한 80만원 되니 부담스럽다. 검색했더니 실내운전면허 시험장이 있는데 오십만원이란다. 전원합격 어쩌고.. 그래서 거기 등록해서 배웠더니 영쉽지 않다.

첫날 안전벨트도 안매서 실격. . . 결국 세번째 치고 나서 포기. 요즘은 옛날같지 않아서 어려운 코스들이 많이 포함되어잇다. 실내운전가지고는 어림 없다. 결국 남은건 경비직.

원래 사주에 직장운이 없다. 직장에 들어가면 반드시 괴롭힘 당하다가 잘린다.그렇지 않았다면 어쩌면 지금까지 직장생할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며 마사지는 없었을 것이다.그래서 그것이 다 운명이며 타고난 것이다. 12만원 주고 경비교육을 이수한뒤에 찾아간 곳은 갈월동의 한 정보통신 회사 건물이었는데 번듯했다. 여기서 일하면 부잣집 머슴살이 쌀밥걱정은 안해도 될것 같다.

그런데 경비실이 개코딱지 만한데다 바로 입구엪에 보란듯이 노출되어있어 좀 쪽팔릴 것 같기는 하다.혹시라도 사람들한테 인사를 하라느니 하면 개 피곤할 것 같다.사실 경비교육중에 인사의 중요성에 대한 것도 포함되어있으니 그러지 말라는 법 없다.

혹시 저 닭장안에 에어콘도 안나와서 자기돈으로 설치했더니 전기세 내라고 하는거 아냐? 얼마전에 그런 기사를 읽었었다. 월급은 210만원. 지하 2층에 경비팀장을 만나보니 사람 털털하고 괜찮다. 꼽창 만나면 골치아프다. 격일근무 밤열시 부터 새벽 네시까지 6시간을 잔단다. 잠 걱정은 안해도 될 듯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중 전화가 왔는데 출근시간은 다시 전화해서 알려주겠다고 하더니 확실한 말이 없고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소개소에서는 왠만하면 쓸거니까 걱정하지말란다.그러는 와중에 다른데서 또 면접요청이 들어왔다.강남의 한 잡지사 빌딩인데 팀장이 나를 보더니 무척 마음에 들어하신다.완전 부담스럽다.

한번 해보시겠습니꽈~~~

목소리에 힘이 잔뜩 든게 무슨 대통령 보좌관 같다.

잘 할수 있으시궸습니꽈 ~~

네.

다시한번 무웃겠스움돠. 잘한다고 약속할수 있습니꽈~~~

거기서 진짜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지만 참았다.앞으로 이십년간의 풍수는 강북보다 강남이라 했다.갈월동이 왠지 끌리지만 이렇게 된 이상 강남이 먼저다.그리고 나서 병원가서 종합검진 받아오라고 해서 피뽑고 있는데 갈월동에서 전화가 왔다. 이미 결정난 후라 어쩔수 없다. 사실 아직 근무시작한거 아니니 번복해도 된다.그런데 어떤것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할때 나는 그냥 선착순을 따른다. 내가 결정할 것이 아니라 우주에 맡기는 것이다.

아니 내가 연락한다고 했자뉴~~

죄송합니다. 연락이 없으셔서.. .

그류? 하튼 알것슈~뚝

사실 마음은 갈월동이었다. 문자를 넣었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인상이 너무좋아서 꼭 같이 근무해 보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한번 연락주시면 제가 술한잔 사겠습니다.

별 쓸데 없는 이런 미친 문자 보내는 놈도 다있구나 생각할 것이고 설마 나한테 술한잔 사주라고 연락할리도 만무하겠지만 진심이었다. 정말 연락 해주면 없는 돈 쪼개서 밥한끼 살 생각이었다.

강남 근무가 시작되었는데 일은 편했다 무엇보다도 경비실이 크고 책상도 입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덜 쪽팔릴것 같다.한가지 걸리는 것은 팀장이 목에 너무 힘주고 있다. 왜 보기만 해도 부담스러운 그런 스타일이다.군출신이란다. 목에 쇠말뚝 밖아놨는지 녹슨 쇠소리가 나는데 똥폼 무지하게 잡는다.

갈월동 팀장하고는 사뭇다른 분위기다. 지금 갈월동에 있었다면 팀장하고 지하실에서 야상입고 앉아서 막걸리에 족발 하나 뜯고 있을텐데 내가 군대 다시온것도 아니고 여기서 쇠소리 들으면서 식은땀 흘려야 되냐고..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강남으로 오게 되었지? 자책이 들수밖에 없다. 같은 실수를 반복한 기분이랄까.

결국은 그거였다. 풍수. 미신에 사로잡혀서 눈에 뵈는게 없는 것 같은 것이다. 풍수가 미신은 아니지만 신비한 현상에 모든 것을 올인하는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깨닫기에는 아직 정신을 덜 차렸다. 어차피 세상의 모든 힘은 알수없는 힘에 의해서 돌아가니 주판만 튀기며 살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경마장에 베팅하는 것도 내 스타일은 아니다.

나는 어리석게도 강제로 종교에 몸담는 바람에 이왕지사 이렇게 된거 모든것을 목사였던 엄마에게 맡겼고 내 모든 재산은 그로인해 공중분해 되었다. 이제 교회와 천국의 약속은 모두 소각했지만 그 신념이 풍수와 역학으로 옮겨갔다. 풍수와 사주가 모든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그렇지만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는것을 아는 나는 그것에 의존할수 밖에 없다.

갈월동은 물이 남쪽에서 흐르니 배운바에 의하면 향후 이십년간 운기를 받을수 없다. 그러니 강남으로 가야한다.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죽는다고 어느 개뼉다구 같은 풍수가가 한 말을 철석같이 믿고 거스르기가 무섭다.천국의 유혹과 뭐가 다른지.

강남 경비직은 첫날부터 삐걱댔다.어찌된 일인지 눈을 떠보니 벌써 삼십분 늦을 것 같다. 황급히 단톡방에 첫날부터 늦어 죄송합니다.알람 셋팅을 잘못했던 것 같다. 등등 넣었더니 왜 단톡방에 그런걸 넣느냐며 지랄들이시다. 단톡방은 근무용이라나..문자로 하거나 전화로 하란다.좀 그럴수도 있지. 디게 딱딱거리는게 일병때 찐빠맞은 때가 되풀이 되고 있다.

"다 잘 만큼 잡니다."

수면시간은 얼마나 되냐니까 얼버무리는게 이것도 좀 미심쩍더니 하루 자보니까 똥밟았다.수면시간이 네시간인데 그 네시간을 두시간씩 나눠서 잔단다. 두시간 자고 교대 두시간 자고 교대다. 안자고 말지. 이거 고문이다.원래 올빼미 체질이라 야간근무 별로 신경 안썼는데 해보니까 집에서 놀면서 밤새는거하고 영 다르다.원래 사람이 청개구리인지라 일찍 자야지 하면 뜬눈으로 새는데 못자게 하니까 디게 졸립다.그만두고 싶어도 팔랑나비도 아니고 좀 끈기있게 버텨보려는데 자신이 없다.

마침 사건이 하나 터졌다. 경비실에서 맡은 등기하나가 없어졌다는 것이다.팀장은 집요하게 나에게 책임추궁을 했고 그 추궁은 세시간이나 이어졌다.

"그냥.. 그만 두겠습니다. 이렇게 까지 막중한 책임 맡고 싶지 않고요.누구 책임소재인지 분명히 가릴수도 없는데 근무자체가 헛점이 있는 것 같네요."

결국 그 등기는 찾았고 내 책임은 아닌것으로 밝혀졌다.근무가 끝난후 팀장은 나를 불러 아까 했던 말을 다시해보란다. 그러더니 은근히 열심히 해보라는 듯이 말을 하길래 못이기는 척 그냥 수긍을 하기는 했다.그냥 그만둘걸 그랬나 했지만 일단 수긍을 했고 근무는 이어졌다. 다음날 팀장은 점심식사후 나를 찾아와 두시간 동안 잔소리를 이어갔다.

"니가 그래서 그랬고 니가 그래서 그런거고 니가 그러니까 그랬고 . . "

와 C바.. 뭐냐 이거..

"네 알았으니까 그만 올라가 보세요. "

"이것도 내 일이야~"

결국 그만두기로 합의하고 끝냈다.그리고 다시 다짐했었지. 그래 난 마사지가 천직이야. 열심히 하자.다지털에 몰입하자. 아날로그의 세계에는 답이 없다. 열시마감이 철칙이었는데 그때 그것이 부서졌다. 어차피 경비직도 야근하는데 얼마나 편히살자고 열시 문닫는가. 좀 고생하자.

그런데 갑자기 점점 잘되기 시작하더니 상일동을 떠날때 즘에는 목돈이 만들어진 것이다.만일 갈월동에 취업했다면 거기서 잠 실컷 자고 이백만원 받으면서 생을 마감했을수도 있으니 어쩌면 그 꼽창 팀장 만난게 행운이었던 셈이다.그러니 모든 것은 순리에 맡기는것이 맞았던 셈이다.

명도소송과 손해배상 소송

처음에 상일동 빌라에 입주하고 일주일 지났을때였다. 베란다에는 버려진 방충망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길래 보니까 나사가 다 빠지고 헐렁거린다. 방충망을 새로 갈면서 빼놓은 방충망을 버리지 않고 복도에 방치했던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버렸는데 주인 부부가 오더니 여기 방충망 있던거 왜 버렸냔다. 그걸 팔면 돈되는거란다.

아니 이분들이 박스 주워 팔아서 집샀나.. . 지금 뭐하자는 건지.. 그러더니 나갈때까지 잊을만하면 방충망어쩌고 하더니 나중에는 있지도 않은 베란다의 방충망을 내가 다 버렸단다.뒤집어 씌워서 보증금 깎아먹으려는 심산인가 보다.

한번은 전기가 안들어와 주인을 불렀더니 안정기를 안달아서 그런거라며 레일 조명도 의심스럽고 레일 한칸마다 총 8개의 안정기를 달고 전화를 달란다. 아예 그냥 못고쳐 준다고 배째라면 귀엽게 봐주겠다. 다행이 멀티탭이 의심스러워 교체했더니 전기는 정상 작동되었다. 검색해보니 멀티탭은 먼지안들어가게 반드시 엎어놓고 쓰고 오래된 멀티탭 방치하면 안된단다.

상일동역 고덕동은 어차피 오래 있지는 않을 예정이었다. 인천고객을 잡으려면 너무 외곽이기도 했고 너무 작아서 살짝 큰 공간이 필요하기는 했다. 그렇다고 아주 넓은 공간을 꿈꿨던 것도 아니었다. 수안보에 있었을때 원없이 넓은 공간을 써보고 나서 그것이 얼마나 헛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살짝 넓은 공간이 필요 했을 뿐이다.

누드크로키 수업을 한 다섯명 받았었는데 베드가 꽉차 공간활용이 어렵다. 실내가 너무 작아 싱크대를 모두 철거하고 베란다로 옮겼는데 베란다에서는 겨울에 수도가 얼면 한 두달 정도는 취사를 포기해야 한다. 다행이 그동네에는 6천원짜리 부페가 있어 한두끼는 해결 할 수 있고 나머지는 과일로 때웠다. 수도가 얼지 않더라도 베란다 주방은 질린다. 여름에 폭염 한겨울 폭한을 견뎌야 하니 밥해먹기가 싫어진다. 그 베란다도 너무 좁아 엉덩이 움직이기가 마냥 수월하지가 않다. 청소좀 할라 치면 발레하듯이 종종 걸음을 해야 한다.

베란다 주방은 생각보다 위험하다.한번은 자다가 새벽두시에 누가 문을 두드려 나가보니 소방관이 대문을 발로 차고 들어왔던 것인데 자물쇠는 박살나있었다.베란다에 들어가보니 밥을 후라이팬에 올려놓고 들어왔다가 깜빡하고 그냥 잠을 잤던 것이다.베란다에 있으니 뭐가 타도 냄새가 안나고 하필 그때 전기렌지 타이머가 고장나 밥이 새카맣게 탔다.

주민들이 신고를 해서 소방관이 왔었는데 자물쇠 수리공님이 하시는 말이 문짝이 부서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고 그분들은 문짝은 박살이 나도 보상해주지 않는단다.

상일동에서 2년의 계약기간이 끝날때 즘 슬슬 이사를 갈까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집주인과 소송이 붙었고 어이없게도 소송은 모두 패했다.

장마철 되니 비가 샌다. 고쳐달라고 해도 말이없다. 장마철이니 이사갈수도 없고 할수없이 내가 고쳐주겠으니 시멘트만 사가지고 오라했다. 대야하고 흑손하고 빨간 장갑도 하나 사오라 했다. 주인이 하는말이 그냥 장갑도 되는데 왜 빨간 장갑이냔다. 빨간 장갑이 이백원 더 비싸다. 진짜 더러워서 욕이 튀어나오는 걸 참았다.

짠돌이가 어쩐일로 밥을 사주겠다며 그동네에서 제일 저렴한 7천원 생선구이집으로 데려가더니 막걸리도 한잔 하시겠냔다.

"다 그렇게 사는거지뭐. . 완벽한데가 있나"

여러본 해본듯하다. 술 한번 사주고 땜빵하려고 사람 들인 것이다.

그리고 공사가 시작됐는데 옆에서 시멘트 물섞어 주고 내가 바르고 해서 5년간 아랫집까지 다 새서 대첵 없었다는 그집은 순식간에 용됐다. 관리인 딸한테 감사의 문자가 왔고 그집 내역을 알게됐다.

"그거 우리 영감님이 고쳤다던데 뭔소리야..."

수리비는 됐고 싱크대 하나 구멍나서 버린게 있으니 퉁치자 했더니 돈 십만원이 아까운지 옆에서 시멘트 물붓고 있었던게 누군데 자기가 고쳤단다. 괘씸해서 월세를 안냈더니 방빼라며 명도소송을 걸어왔다. 집고쳐 준 건 그냥 고쳐준거니 안 먹힐 것 같기도 하고 측간 소음을 구실삼아 손해배상 청구를 했는데 질것 같으니까 돈을 썼는지 어이없게도 소송은 모두 패했다.

벽 한귀퉁이가 나무 벽에 벽지 발라놓은 것이라 낮에는 하품하는 소리 밤에는 코고는 소리까지 다 들린다. 문자내역 사진 등등 내가 너무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자 지딴에는 머리좀 썼다는게 내가 화재를 일으켜 옆집 명품옷을 태웠다며 주민들 탄원서까지 받아 제출했다.

그리고 화재증명원을 제출했는데 그 화재증명원에는 그들이 거짓말 한것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자기 무덤을 판것이다.

"다른 증거는 없습니까?"

"증거는 없지만 이사람들이 제출한 화재 증명원만 보더라도 이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대번 알수가 있는데요. "

소실 면적 0

소실 된 물건 없음

그을음 면적 없음.

훼손 후라이팬 한개.

"밥하다 후라이팬 하나 태운게 전부입니다.그런데 무슨 제가 화재를 일으키고 옆집 명품옷을 태웁니까?어떻게 신성한 법정에서 사람을 모함하고 거짓진술로 법정을 모독합니까!"

법정모독에도 불구하고 소송은 깨끗하게 패했다. 원래 공망년이나 공망일에는 소송하면 진다고 했지만 나는 증거가 명확했기 때문에 희망을 걸었었다.

'그들은 법정에서 위증을 한 사람들이며 위증은 범죄입니다.더이상의 증거를 받지 말아주실 것이며 저또한 더이상의 증거에 답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슨 월세를 안내기 위해서 일부러 촬영을 했으며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문자를 발송해 정신적인 피해를 입었다나 어쨌대나 하면서 증거도 없고 상대하기도 찌질한 진정서를 계속 제출해왔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형사소송에서만 통하는 말인줄 알았다.민사소송도 예외가 아닌듯하다.

또 이어진 이사

진술충. 지금 나는 진술충의 대운 중반에 들어있다.진과술이 충하면 돈이 쏟아진다고 한다.진술충 대운이 시작된뒤로 주변사람들과 싸우면 항상 손님이 늘고 돈이 들어왔다 소송이 시작된지 6개월 정도 동안에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니 소송에 졌어도 진게 아닌셈이다.

어쨌든 그래서 부랴부랴 한달이내 이사를 가야 했는데 이사준비로 한달이면 넉넉한 기간이 아니다.그냥 짐만 간다면 모르겠지만 인테리어도 한 보름이상 해야 한다.내가 가진돈은 8천만원이 전재산이었다. 이번에는 남의집 살지말고 코딱지 만한 집이라도 내 집을 가져보자 싶었다.그런데 네이버 부동산을 아무리 뒤져봐도 9천만원이 최저가였다.가보지는 않았지만 사진이나 도면상으로 보면 그 최저가 오피스텔도 어찌나 코딱지 만한지 베드 두개가 들어갈지 의문이었다.

그래서 결국 다시 월세를 잡아야 하는데 이번 만큼은 좀더 중앙으로 와야했다.상일동 역은 너무 치우쳐 있다. 강서구나 인천에서 오기는 버겁다. 한번 오신 분은 다시 오지 않을 수있다. 영등포나 노량진쪽으로 잡을까 싶지만 물이 굽은 곳이 아니라 풍수에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강남? 너무센데...한번 풍수에 올인해 볼까?

끝. 감사합니다.

이후 이야기는 강남일기에서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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